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변해 버린 성격
지금은 유치원 아이들도 개인 전화를 갖고 있지만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전화 있는 집이 드물었다. 특히 땅보다 하늘이 가까운 산동네에 아이들이 다니는 내 초등학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학년초가 되면 선생님은 항상 가정환경을 조사한다며 있을 리가 없는 냉장고, 세탁기 등이 있는 아이들은 손을 들라고 하셨다. 정말 간혹 손을 드는 아이를 우린 부러움에 질투하곤 했다.
그러나 텔레비전과 전화가 있다고 손든 아이에겐 질투조차 못했던 것 같다. 텔레비전과 전화는 우리가 도저히 살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물건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 같은 가난뱅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화 중에서도 백색전화는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빽’도 있어야 하는 것으로 어른들이 말하는 걸 들어서 그런지 백색전화를 가진 아이에게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가난한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가난했던 나는 전화 거는 법, 받는 법도 몰랐다. 그저 눈치 보며 이웃집 마루 턱에 앉아 본 텔레비전 수사반장 몇 장면이 내가 가진 전화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그때가 5학년 때였는데도... 우리 반 아이들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아이들이 한심했는지 하루는 선생님이 전화 예절을 가르쳐주겠다고 오늘 하교 후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셨다.
전화가 없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주황색 공중전화 앞으로 달려갔다. 나도 무작정 아이들 뒤를 따랐다. 하지만 전화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줄 서서 기다리며 어떻게 해야 하나 갑갑하기만 했다. 내 순서를 기다리며 전화기를 들고 20원인가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르고 하는 것은 앞사람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외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선생님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고민은 내 순서를 다음 아이에게 양보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징글징글한 시간이 꽤 지난 후 난 무조건 내 앞에 아이가 한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 앞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을 무조건 외웠다. 그리고 전화를 마친 아이를 통해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된 후 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면 난 이렇게 대답하고 또 이렇게 물으시면 이렇게 대답하는 시나리오를 완벽히 짰다. 몇 번의 선생님 역할을 해 준 친구와 철두철미한 연습을 한 후 난 수화기를 들었고 들려오는 선생님의 음성에 내가 연습한 대로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너 ○○랑 같이 있지?”
“네”
“○○이랑 하는 말이 똑같아. 선생님 질문이 다른 데도 말이야. 내일 학교에서 이야기하자. 알겠지?”
“네...”
난 내가 전화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부끄러운 사실이 온 세상에 까발려진 것 같아 너무 창피했다. 다음날이 안 왔으면 싶었다. 선생님은 어제 전화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불러 뭘 잘했고 뭘 못했는지 이야기해 주셨다. 난 내 순서가 오지 않기 바랐지만 결국 얼마 후 나를 부르셨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생각 하니 끔찍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선생님은 나를 빤히 보며 “네가 우리 반이었니?”라고 물으셨다. 40년이 지난 아직도 그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어제 찍은 사진처럼 선명하다. 정말 내가 당신 반의 아이였는지, 당신 반에 나와 같은 아이가 있었는지 몰랐다는 표정이셨다. 그 이후로 몇 마디 말씀하셨지만 다른 말씀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당시 우리 반은 한 60명 정도 됐던 것 같다. 그 많은 아이들을 일일이 기억하기 힘드셨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10월인데...
그때 선생님은 전화 예절을 친절히 가르쳐 주셨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까불이”, “촉새”로 불릴 정도로 활발했던 나에겐 큰 상처를 주셨다. 선생님들 앞에서 주눅 들기 시작한 것이, 선생님에 대한 반감이 생긴 것이 이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이 사건 이후 내 마음속엔 다양한 버전의 시나리오를 짜는 습관이 생겼고, 또 난 당신처럼은 안 해하는 반골 기질도 생긴 것 같다.
가끔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내 말이 40년 전의 ‘까불이’에게 준 상처가 되지 않을까 겁이 난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나와 이야기하고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주의 깊게 본다. 가끔 풀이 죽은 모습으로 가는 아이를 보면 문득 저 아이가 몇십 년 후 나처럼 되지 않을까 겁이 난다. 때론 내가 예측하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오늘 또 한 명의 까불이를 죽였구나 하는 자책감을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요즘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이 자책감이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이고 무섭다. 또 이 상태로 얼마가 지나면 이 자책감마저 그럴싸한 다양한 이유로 합리화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에도 내가 선생을 하고 있을 것 같은 공포!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