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파서...

by 이동수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다. 소풍 갈 때 누구랑 갈지, 뭘 입고 갈지, 뭘 싸가서 먹을지...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 온종일 며칠 후에 갈 소풍 이야기만 했다. 하지만 난 아이들의 어떠한 대화에도 낄 수 없었다. 그 시절 아이들 특유의 낭만적 상상과 약간의 과시성 허풍이 빚어대는 행복한 교실 속 풍경화에서 난 화가가 실수로 떨어뜨린 물감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난 그저 한 구석에서 그렇게 있었다.


그날도 어느 왕릉으로 소풍을 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았다. 왕릉에 올라가면 가만 안 둔다는 선생님들의 말씀과 험상궂은 표정도 잘 가꾸어진 풀을 봐 이미 흥분해 버린 여러 마리의 망아지들을 통제할 순 없었다. 으레 벌어지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선생님들도 포기했는지 아니면 허용해 주시는 건지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각 반 반장, 부반장이 찬합에 가득 싸 온 김밥과 과일을 나눠 드시면서 가끔 뭐라 하실 뿐이었다.

미치도록 뛰어다니다 배고파진 우리는 자연스레 각자가 싸 온 도시락을 꺼냈다. 대부분 일회용 나무 도시락에 싸 와 아이들 움직임을 견디지 못하고 반은 으깨진 상태의 김밥이었다. 좀 사는 아이 한두 명이 스뎅 도시락에 싸 와서 비교적 멀쩡한 김밥을 꺼내놨지만 그래도 김밥은 망가져 있었다. 내 도시락은 감자 볶음밥과 한쪽에 단무지를 일회용 나무 도시락에 담은 것이었다. 그런데 꺼내려고 보니 내 도시락은 가방 속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으깨졌고, 볶음밥 기름이 가방을 적셔 밥은 물론이고 가방마저도 멜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도시락 잔해와 기름이 잔뜩 묻은 봉지에 든 역시 으깨져버린 계란 세알을 꺼냈을 때였다.

“야, 너 그게 뭐니?”

“응, 버리려고”

엉겁결에 버릴 거라고 말해 버렸다. 아무리 모양이 그래도 분명 밥이었다. 그걸 뭐냐고 묻다니, 그것도 인상을 잔뜩 쓴 채로. 순간 너무 창피했다. 도저히 먹을 거다, 오늘 점심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알기엔 그놈 집 역시 그리 잘 살지 않았다.

그 시간 이후 소풍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기가 죽어 아이들과 노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남들처럼 김밥 하나 싸주는 게 뭐 어렵다고 기름에 잔뜩 절은 볶음밥을 싸줘 이런 창피를... 내 머릿속은 온통 부모님 원망으로만 가득 찼다.

한 학기가 지나 학교에서 소풍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일하고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에게 이번 소풍 땐 꼭 김밥을 싸 달라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그때 봐서 했다. 엄마의 그 말은 또 볶음밥을 싸준다는 말이었다. 한 달 450원인 육성회비도 못 내서 쫓겨나는 우리 집의 형편으론 김밥은 큰맘 먹어야 먹을 수 있는 것임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봐서라는 엄마의 말에 더 이상 떼를 쓸 수도 없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감자 볶음밥이다. 투덜대는 내게 엄마는 소시지 넣었다고 이게 김밥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 말해 봤자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들과 만나기로 곳에 가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봄 소풍 때 그게 뭐니?라고 한 아이의 표정, 주변 아이들의 웃는 표정이 자꾸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한 녀석이 먼저 와있었다. 녀석을 보자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아, 나 배 아파서 도저히 소풍 못 갈 것 같아.”

“뭔 소리야? 많이 아파?”

“응, 아무래도 못 가겠어. 네가 선생님한테 말 좀 해줘. 나 집에 갈게”

거짓말까지 하고 학교를 빠지다니, 그것도 소풍날. 뒤돌아오는 데 너무 슬펐다. 그리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아이들의 눈을 피해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보통 때 같았으면 산꼭대기는 달동네 아이들로 가득 찼을 텐데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서 멀쩡한 감자 볶음밥을 먹고 혼자 시간을 보내다 그리고 아이들이 소풍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쯤 돼서 내려왔다.

다음 날 학교를 가니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너, 어제 왜 학교 안 왔어?”

“배가 너무 아파서... 설사하고 그랬어요.”

“그럼, 연락을 해야지, 그냥 안 오면 돼!”

○○이가 담임선생님에게 전하지 않아 예의 없는 놈이라는 지청구를 들었지만 그리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소풍마저도 거짓말하고 빠져야 하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상하리만치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TV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시절 친구를 찾고 만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딱히 공감이 되지 않는다. TV 프로그램을 보며 애써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마치 블랙홀처럼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애써 기억을 더듬으면 좋았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꼬낏꼬깃 숨겨놨던 소풍날 김밥을 못 샀다고 철없이 거짓말까지 하고 학교를 가지 않았던 우울한 기억이 “나 여기 있어요.”하며 비집고 올라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소풍, 수학여행, 체험학습 철이 되면 나는 40년 전 나처럼 행복한 풍경 속 배경으로만 머무르는 아이들이 있지 않나 유심히 살핀다. 다행히 지금은 경제적 이유로 기죽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러나 친구들 사이 따돌림, 끼리끼리 노는 문화로 상처 받아 배경으로 머문 아이들은 더 많아진 것 같다. 그 아이들이 “재미없어요”, “그냥 가기 싫어요.”라고 하는 걸 보면 가슴 너무 아프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시절을 나와는 다른 이유지만 더 가슴 아픈 이유로 아름답게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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