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니라 집중하지 못한 아이들이 문제예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by 이동수

몇 년 전 그때 난 근 10년 만에 담임을 맡아 매일매일 신이 났었다. 그 당시 난 부장을 하며 게으름과 무책임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담임선생님들에 나름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담임을 해서 게으르고 무책임한 너희들에게 담임의 ‘본’을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매일 아이들과 상담을 하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바로 실천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아이들도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살갑게 다가와 주었다. 한 아이만 빼고.

“선생님, ○○이 때문에 힘드시겠어요.”

“왜요? 뭔 문제 일으킨 아이예요?”

“애가 버릇이 너무 없어요. 1학년 때부터 작년까지 매년 서너 차례 이상 선생님들한테 대들고... 엄마도 자기 자식 잘못했다고는 안 하고 선생님들이 나쁘게만 본다고 하고... 하여간 애나 부모나 말이 안 통해요. 그래서 3학년 학급 배정할 때 선생님 반은 ○○이 빼고는 모두 문제가 없는 아이들로 배정했잖아요. 아무튼 ○○이가 일당백이에요.”

“그래요? 힘들겠네. 그래도 뭐 어떻게 하겠어요? 잘 이야기해 봐야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자신이 있었다. 조금 더 아이 입장에서 말을 들어주면 분명 아이는 달라지리라 믿었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열다섯 아이가 뭐 대단하랴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는 첫날부터 눈에 띄었다. 짧게 자른 머리와 와일드한 몸짓과 큰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하는 ○○이를 보며 최대한 부드럽게 주의를 주었지만, 선생님들이 해준 ‘버릇이 없는 아이예요.’하는 말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최대한 편견 없이 아이의 입장에서 듣자’를 되뇌며 ○○이와 이야기했다. 그래선지 처음엔 잔뜩 날이 선 듯했던 ○○이의 모습도 점차 풀어져 갔다. 그렇게 나와 ○○이의 조심스럽고 원만한(?) 동행이 이어지던 3월 말까지 이어졌다.

아이들과 이야기 많이 하는 담임이 되겠다고 결심한 난 상담 노트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고민 없으면 안 써도 되죠?”

“아니, 꼭 고민만 쓰는 건 아니야. 재밌는 이야기를 써도 좋고... 하여간 어떤 이야기를 써도 좋아. 매주 수요일 아침에 걷을 거야. 그 사이에라도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언제든 교무실 선생님 책상 서랍에 넣어놓아도 돼.”

“안 내면 어떻게 돼요?”

“방과 후에 선생님과 개별 상담하지. 그러니 잘 내.”

그렇게 상담 노트를 걷고 간단한 답장을 써주었다. 그런데 지난주 상담 노트부터 몇몇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이가 너무 떠들어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신고(?)를 했다. 난 ○○이에게 가볍게 주의를 주었다. ○○이 역시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결된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 주 상담 노트를 보니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이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의 호소를 무시할 순 없었다.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다고 결심하고 점심시간에 ○○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아, 저번 주에 선생님이 너 때문에 공부하기 어렵다고 하는 아이들이 여러 명 있으니 좀 조용히 하자고 했잖니? 너도 알겠다고 했고. 그런데 이번 주에는 너 때문에 공부하기 어렵다는 아이들이 더 늘었어, 어떻게 된 거니?”

“누가 그래요? 말해주세요. 걔들에게 어떤 피해를 봤는지 물어보게요. 제가 떠들어도 지들이 집중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집중 안 하고 있으니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거잖아요.”

○○이는 떠든 것은 인정하지만 아이들이 피해 본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떤 피해를 봤는지 확인해야겠고, 피해를 봤다면 직접 사과해야겠으니 자기를 신고한 아이들을 알려달라고 떼를 썼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뒷머리는 더 뜨거워졌고 고혈압인 나는 이러다 혈관이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연구실에 계신 다른 선생님들이 흥미 반 걱정 반으로 나와 ○○이를 보고 있었다.

난 잠깐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아, 네 얘기를 듣다 보니 선생님이 머리가 아프구나, 네 입장에서 생각해 볼 테니 너도 여기 앉아서 잠시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내가 ○○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이는 그런 나를 아무 말없이 자리에 앉아 지켜봤다.

“○○아, 선생님이 천천히 생각해 보니, 사실 여부를 떠나 같은 반 이이들에게 고발된 것이 너무 기분 나쁜 일이란 걸 선생님이 미쳐 생각 못 했구나. 마음이 많이 상했지?”

“...”

“미안해. 선생님이 너라도 기분 나빴을 거야.”

“괜찮아요. 저도 생각해 보니, 제 기준으론 떠든 게 아니지만, 아이들 기준으로 보면 떠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하니 조심할게요.”

“그래 주면 정말 고맙겠구나.”

이렇게 혈압이 터질 것 같은 위기를 넘긴 후 나눈 ○○이와 대화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지만 난 안심할 수 없었다.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려면 ○○이를 알아야 했다.

○○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겨우 연결된 ○○이 아버지는 ○○이 학교라고 하니 다짜고짜 ○○이 문제는 엄마가 담당하기로 했다고 대화 자체를 차단했다. 답답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어머니와 연결됐다.

“○○이 어머니세요? 저 담임입니다.”

“네. 그런데요?”

전화기 너머로 나에 대한 적의가 느껴졌다. 뭐지 싶고 감정이 상했지만 꾹 참고 말했다.

“어머니, 제가 한 달 가까이 ○○이를 지켜보니 ○○이가 평범하진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이를 지도하려면 ○○이를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어머니께 전화드렸어요. 저에게 ○○이에 대해 알려 주실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한숨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리고,

“선생님, 죄송해요. 학교에서 전화만 오면 ○○이 왜 그러냐고? 왜 버릇없이 구냐고 말씀하셔서...”

“어머니 전 남과 다른 아이지 ○○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에 대해 알고 싶은 거예요.”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초등학교 때만 해도 예의 바르고 싹싹하단 이야기를 듣던 아이였는데... 저희도 ○○이의 행동이나 말이 분명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집에서도 혼도 내보고 안 해본 것이 없어요. ○○이 아버진 아예 포기했어요. 하지만 선생님들이 선생님처럼 ○○이를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뭐라 하기만 하는 통에...”

“어머니, ○○이를 맡은 지 얼마 안 됐지만 의협심도 있고,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아이라고 보고 있어요. 간혹 지나칠 때도 있지만 그건 아직 어리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급회장을 하며 담임선생님과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좀 엄한 선생님이어서 ○○이에게 계속 뭐라 했는데, 얘가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는 듣지도 않고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더 버릇없이 굴었어요. 그게 2학년 때도 이어졌고요.”

“그랬군요. 어머니, ○○이를 바로 고치려고 하지 않을게요. 조급하게 바꾸려 하지 않고 기다릴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언제든 전화 주세요.”

다른 선생님들 말만 듣고 ○○이에 대해 판단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왜 문제라고만 생각했을까? 왜 먼저 그리고 끝까지 이야기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래 놓고 뭔 지도를 한다고... 후회가 되었다.

1학기가 끝날 즈음, ○○이는 여전히 선생님들과 부딪혔고 버릇없는 자기 멋대로인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담임인 내 얘기만은 무조건 듣는 아이가 되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이 모습을 신기하게 여겨 나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 난 “내가 뭐 한 게 있나? ○○이가 그만할 때까지 들어준 게 전부야. 듣고 있으면 지 스스로 반성하고 다짐하고 하더라고.”라고 말해 주었다.

○○이는 오랜만에 담임을 하는 내게 던져진 폭탄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이는 나에게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들의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물론 모든 순간, 모든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할 순 없다. 그래도 다르다는 이유로 버릇없다고, 틀렸다고 하지 않았으면 싶다.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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