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째! 난 몰라!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기

by 이동수

교직에 들어선 지 10년쯤 되었을 때였다. 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10년쯤 하다 보니 학교가 따분하고 지겹기만했다. 그 시절 난 삼십 중반의 교사들이 흔하게 겪는 반항기에 있었던 것 같다. 기존 질서의 답답함, 매년 반복되는 행사,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정을 앞세우는 태도, 강압적인 관리자와 무기력한 선생님들의 모습 등에 난 숨막 해 했다. 그와 반대로 나 자신의 능력과 인격은 과장하고 있어서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어야 하지?’하는 불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든 게 불만이었다. 벗어나고 싶은데 마땅한 길은 보이지 않자 난 점점 더 안하무인이 돼갔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습관적으로 비난을 한 후 “난 안 해! 배 째!”하고 외쳤다. 그런 내 모습을 불의에 항거하는 거라 생각하며 영웅시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충실히 일하시는 선생님들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 아부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뒤에서만 떠드는 비겁한 사람으로 폄하했다.


그렇게 내 ‘영웅 놀이’는 점점 심해져 갈 즈음이었다. 그날도 난 선생님들이 자주 모이는 연구실에서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학교가 하려는 그 일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잘못을 짚어나갔다. 또 그 일에 협조하는 사람을 서슴없이 비난했다. 그렇게 한참을 망나니짓을 한 후 그럼 어떻게 하느냐는 선생님의 하소연에 의기양양 “몰라, 선생님은 하고 싶으면 해. 난 안 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후배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다 좋은데 그 말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이요?”

“지금 하신 ‘배 째! 난 몰라’라는 말이요.”

“왜요? 내가 틀린 말했어요?”

“아뇨,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학교 일이라는 게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아무 대안도 없이 그렇게 말하시면... 후배들이 뭘 배우겠어요?”


난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 잠깐 사이에 내가 그동안 했던 그 무식한 ‘영웅 놀이’ 모습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너무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체 말도 안 되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고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후배들은 온갖 잘난 척하면 비판만 하고 아무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 날 어떻게 봤을까?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웠다. 특히, 해야만 하는 일,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나는 잘나서 안 한다고 떠벌렸던 내 모습은 견디기 어려웠다. 이후 나는 후배들이 내 행동이, 내 말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하며 생활했다. 비록 능력과 인격의 부족으로 아직도 잘 안될 때가 많지만, 가급적 대안 있는 비판, 품격 있는 행동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예전에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하는 선배에게 난 절망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20년 전 내 말에 후배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영웅 놀이에 빠진 선배, 학교가 어떻게 되든 자기만 편하려고 하는 선배보다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선배,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나 점점 더 내 능력과 인격으론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선도 지키기 어려운 것 같고, 내가 가진 것만을 억지로 지키려 하는 꼰대가 돼가는 것 같아 미안하다. 특히 후배들에게 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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