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권위와 전문성은 학생들의 선물
얼마 전 집에서 쉬고 있는데 몇 년 만에 낯익은 번호로 문자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열어보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이 엄마예요.”
“네, 어머니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이가 중학교를 잘 마쳤어요. 그래서 아직도 ○○이가 선생님을 제일 존경해요.”
“저도 ○○이 같은 제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선생님,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이가 자기주장이 강하잖아요. 그래도 차분히 설명하고 들어주면 잘 고치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해주셨잖아요. 그래서 선생님 말씀이라면 자기를 위한 말로 알고 무조건 따랐잖아요.”
“그랬죠. 저야 뭐 그냥 ○○이가 마음껏 얘기할 수 있도록 들어준 그것밖에 없는데…. 그걸 ○○이는 고마워했죠. 그래서 2학기에는 서로 간에 신뢰가 생긴 게 아닌가 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이 바쁘고 하다 보니 ○○이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넌 왜 그 모양이냐!’ , ‘넌 왜 이렇게 버릇이 없니~’ 했나 봐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이가 그런 선생님들에게 더 반항적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과 더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현재 담임선생님과 사이가 최악이라는 거예요.”
“큰일이네요. 고3인데….”
“네. 담임선생님이 화가 많이 나셔서 농어촌 수시입학 추천서를 써 줄 수 없다고 하세요. 죄송하지만 ○○이가 선생님 말씀은 들으니 ○○이를 만나서 담임선생님에게 사과하라고 해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졸업했지만 제 제자이니 AS 해 드릴게요. ○○이 핸드폰 번호가 그대로인가요? 전화해서 내일 만나볼게요.”
“네, 그대로예요. 감사해요. 부탁드릴게요. 농어촌 접수가 며칠 안 남아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아니에요. 어머니 잘 이야기해 볼게요. 아마 ○○이는 자기 나름대로 해결책을 이미 가지고 있을 거예요.”
어머니와 전화를 끊고 바로 ○○이와 다음날 만나기로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이는 “왜 선생님들은 선생님답지 않냐고….”, “왜 내 말은 들어주지 않고 자신들의 말만 일방적으로 강요하냐고….” 하며 그동안 자신이 당한 일들과 설움을 한참 쏟아냈다. ○○이의 흥분이 어느 정도 진정된 후 난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아, 담임선생님과 사이는 금방 해결되지 않겠구나.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농어촌 추천서를 써주지 않으면 당장 네가 곤란한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꼭 담임선생님이 써야 하는 건 아닌데, 담임선생님이 안 써준다고 하니 다른 선생님들도 못 쓰겠다고 하세요.”
“큰일이네….”
“제가 내일 담임선생님에게 만나서는 못할 것 같고 사과 편지를 써서 자리에 올려놓으려고요. 농어촌 추천서도 추천서지만 담임선생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단지 저와 맞지 않을 뿐이지.”
“그래 잘 생각했다. 이미 너는 네 나름의 해결책을 갖고 왔구나. 선생님이 괜히 불렀네.”
“아니에요. 선생님 만난다고 하니 어제저녁부터 좋았어요.”
삼 년 만에 본 ○○이는 여전히 선생님들과 문제를 일으켰지만, 자신만 고집하던 아이에서 상대방 처지를 생각하는 아이로 분명 성장해 있었다. 사실 ○○이 어머니에게 AS 해드린다고 했지만 ○○이가 다 알아서 했으므로 AS 할 게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선생님과 제자가 만나 수다를 떨었을 뿐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로 고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거부할 경우 때론 ‘감히 선생님 말을 어겨, 다 너 잘되라고 그러지 괜히 그래, 내가 교육 경력이 얼만데’ 뭐 이런 레퍼토리와 함께 변화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권위와 전문성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초라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이 인정하지 않는 권위와 전문성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오랜만에 찾아온 ○○이를 통해 나는 교사의 권위와 전문성은 학생들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자연스레 교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