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책임져야 해요?”

선생님은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

by 이동수

매주 금요일 아이들이 모두 하교 후 남선생님들은 축구를 했다. 축구를 잘하든 못하든 거의 모든 남선생님들이 운동장으로 나왔다. 1시간 정도 거친 운동을 하고 학교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서 밥을 먹고 자연스레 술을 먹는다. 술이 들어가면 자연스레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한 선생님의 목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담임이 모든 걸 책임져요? 담임이 무슨 죄인가요? 제가 하지 말라고 해도 안 듣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에요? 부모도 못하는 걸 학교나 담임에게 요구하는 건 뭐가 잘못된 것 같아요. 전 세 번 이야기해서 안 들으면 더 이상 얘기 안 해요.”


왜 저러지 싶어 옆 선생님에게 살짝 물어보니 아이가 수업 시간에 자기 멋대로 없어져서 문제가 됐는데 교감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을 불러 관리를 잘하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교감선생님의 강단으로는 위압적이거나 지시적이기보다는 부탁하는 모습이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저처럼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평소 난 저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 선생님을 볼 때면 왠지 ‘직업으로서의 교사’의 전형적인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선생님의 말과 행동은 교사의 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도 교사 전체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였다. 그걸 이야기하는 방식도 오늘 같은 술자리에서 마치 영웅처럼 이야기하며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업으로서의 교사나 교사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 또한 교사를 해서 월급을 받아 그것으로 생활을 하고 또 월급이 적다고 투덜대는 말 그대로 ‘직업으로서의 교사’다. 또 교사의 권리가 보장될 때 교사의 자율적인 교육활동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교사의 권리가 소홀히 취급될 때 항의를 하고 때론 이런 곳에 다녀야 하나 하는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교사는 ‘직업으로서의 교사’, ‘교사의 권리’ 말고도 뭔가 아이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교사, 거창하게 말하면 ‘소명 의식’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참 교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치관 특히 교육에 대한 철학은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형성된 것으로 누가 이야기한다고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령 이야기한다고 해도 서로의 생각을 고집하다 언성만 높아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담임은 최소한 학교에서는 아이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자식의 모든 것을 책임지듯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진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담임이 책임지고 여기 다음부터는 아니다는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담임이 힘들고 그래서 보람찬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보면 교사 직업의 인기가 상한가다. 그래서 그런지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에 입학하려면 최고 성적이 아니면 어려운 것 같다. 내가 교사가 됐던 30여 년 전만 해도 적어도 남자들에게 교사는 인기 직업이 아니었다.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곳이 많았으며 또 사회적 인정을 받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사범대학 내 동기 남자 중 절반 이상이 교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택했다.


교직이 인기 있게 된 것은 IMF와 수많은 경제 위기 속에서 부모의 실직을 경험한 아이들은 자연스레 직업의 안정성을 중시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나 교사의 직업 선호다가 급격히 상승했다고 한다. 30년 전 비인기 직업이었던 교직이 현재 인기 직업이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직업 안정성만으로 인기 직업이 된 것 같아 한쪽으로는 좀 낯설고 착잡하기도 하다.


점점 더 직업으로서의 교사관을 가진 선생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명 의식만을 강조해 교사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인내를 이야기하시는 선생님들이 문제이듯 자신의 권리나 안정성만을 내세워 학생들에게 자신이 주는 영향은 신경 쓰지 않는 선생님 또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서로를 이기적이라 하고 꼰대라고 하며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게 지금의 학교 모습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 선생님’들은 나를 지나치게 철학적이라고 한다. 아마도 ‘소명 의식’만을 강조한다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맞다. 나는 소명 의식을 강조하는 편이다. 나는 회사원 하고 교사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회사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며 소통한 것이 아니라 훈계하고 나무랐던 것 같다. 내가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소명 의식’을 강조해서가 아니라 소통 방식이 잘못돼서가 아닐까? 그래 놓고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그들만 탓했었다. 그들을 싫어했다. 참 못났다.


앞으로 학교 현장을 이끌어 갈 사람들은 내가 아니다. 내가 이기적이라고 폄훼했던 그들이 학교를 이끌어 갈 것이다. 그들과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해야겠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람을 만든다는 최소한의 소명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 학교에서의 내 역할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점점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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