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그 날 왜 화가 났을까?
무슨 일 때문인지 학교는 정신없이 청소를 시켰다. 몇 놈은 아니었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은 그저 수업받는 것보다는 좋았으므로 즐거웠다. 청소를 시키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이삼일을 그렇게 청소하고 우린 강당에 모여졌다. 6.10 만세 운동을 이끈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교장선생님의 엄청나게 긴 말씀 후 학생부 선생님의 협박이 한참 이어진 후 우리에겐 잠시 동안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이 시간에 싸우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 친구는 옆반 아이로 줄 서는 문제로 티격태격하다 욕을 하게 되고 그게 학생부 선생님에게 걸려 맞았다. 웬일로 한 대만 때리시고 들어가라 하셨지만 우린 서로를 탓하면 끝나고 가만 안 둔다고 서로 째려보며 행사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차분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여름의 더위와 숨 막히는 감시는 우릴 더 흥분시켰던 것 같다. 우린 서로 짜증을 풀 만한 대상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우린 몇몇 친구들의 호위와 응원을 받으며 강당 뒤로 갔고 몇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학생부 선생님들의 등장과 함께 자연스레 끝났고 우린 선생님의 몇 대의 주먹질과 함께 학생부실로 끌려갔다. 선생님들은 반과 이름을 물으셨다. 그런데 상대가 나와 이름이 같았다. “양동수”였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오늘이 어떤 날인데 싸우냐고, 니들은 학교에 똥칠하는 놈이라고 하셨다. 오늘 장학사인지 누군지 오는 중요한 날인데 니들이 싸워서 그걸 그분께서 보셨다면 이 학교를 뭘로 생각하셨겠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장학사는 알포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장학사’ 뿐이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마저도 꼼짝하지 못하는 대단히 높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분이 학교에 오는 데 나는 철없이 싸웠다니 정말 잘못했고 죄송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매타작이 후 우린 학생부 문 앞에서 꿇어앉은 채 반성문을 썼다. 점심도 못 먹고 4시간 이상을 꿇어앉아 있었던 것 같다. 난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썼다. 이름도 같은 데 철 모르고 싸워 학교를 부끄럽게 한 점을 신랄하게 자아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반성문이 마음에 드셨는지 말은 잘하는구먼 하셨다. 그리고 1주일 동안 수업이 끝나고 학생부에 와서 반성문 쓰고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 한 번만 특별히 용서한다는 은혜로운 말씀과 함께 집에 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서려는데 발목이 펴지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쇼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하셨다. 우리는 발목을 주무르고, 손가락에 침을 무쳐 전기를 풀며 학생부실을 감사하며 나왔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이 고생한 전우애였던 것 같다. 가끔 교무실에 끌려온 아이들이 아이와 상관없는 일로 더 혼나는 것을 볼 때면 내 친구 “양동수”가 떠오른다.
내가 친구와 주먹질을 하며 싸운 것은 정말 잘못한 행동이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친구와 싸운 것을 혼낸 것 같지는 않다. 친구와 싸운 것이 나쁜 짓이 아니라 학교에 중요한 손님이 오는 데 그분들이 보면 안 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혼낸 것 같다. 언젠가부터 학생보다는 학교의 위신을 더 중시하는 학교라는 생각이 들자 선생님들의 나를 위한 말씀도, 정의로운 말씀도 의심하게 되었다. 그 당시 선생님들이 “왜 싸웠니?”, “다친 데는 없니?”라고 먼저 물어보셨다면 나의 학교 생활은 조금 더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 학생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또는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학생들을 혼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 나면 나 역시 내가 싫어했던 선생님이 되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빠져들곤 한다. 나에게 혼나고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나는 왜 화를 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최소한 알면서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