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발칸포

이유 없는 웃음은 없다

by 이동수

내가 다닌 학교는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경복궁과 청와대가 있었으며 학교 바로 뒤에는 감사원 등 국가 기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아름답다는 창덕궁과는 담장을 같이 쓰고 있었다. 청와대 등 국가기관이야 평범한 고등학생에게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바로 옆 창덕궁은 달랐다. 그 당시만 해도 창덕궁은 일제가 우리 문화를 낮춰 부르기 위해 사용했던 “비원”으로 불렸는데, 비원은 비밀스러운, 엄청난 비경을 지닌 정원의 의미였던 것 같다. 비원은 이름에 걸맞게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공간을 우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때는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랐다. 사계절 다른 색으로, 형상으로 나타나는 이 신비스러운 존재는 그저 옆집의 소나무요 앞 동네의 뽕나무일 뿐이었다. 있어도 있는 줄 모르고 지내던 창덕궁을 애국조회 시간에는 꼭 쳐다봤다. 언제인지 그날도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애국조회를 하고 있었다. 꼼짝하면 뒤로 끌려 나가 얼차려를 받았기 때문에 차렷 자세로 사열대 위를 멍하니 바라보고 빨리 끝나기만 바라고 있었다. 그때 몇몇 아이들이 키득대기 시작했고 곧 대부분의 아이들이 웃었다. 우리들의 행동에 놀란 선생님들이 원인 파악을 위해, 신성한 조회 시간에 웃는 망할 놈을 혼내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닐수록 우리의 웃음은 더 커져 갔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웃은 것이 선생님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들이 웃은 것은 저 지겨운 창덕궁 정원 꼭대기에 있는 정자에서 아마도 군인인 한 사람이 우릴 보고 희한하고 과장된 몸짓 때문이었다. 그 군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긴 시간 서있는 우리를 불쌍하게 봐서 잠시 웃음을 주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기나긴 교장선생님의 엄숙한 훈화 뒤로 멀리 창덕궁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그 자체로 앞 화면과 대비되어 너무 우습게 보였다. 몇 분의 소동은 학생부 선생님들의 욕설로 인정되었지만 그날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우리의 집중력이 하찮음을 탓하는 내용까지 더해져 더 길어졌다. 아무 감흥 없이 지켜보던 창덕궁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밤이었다. 야간 자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서던 우리는 그 정자에서 “따따따 따...”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한 밤하늘에 붉은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정말 예뻤다. 무슨 불꽃놀이를 하는 줄 알았다. 한 번 더 그러더니 기다려도 다시 안 하길래 우린 서로 멋있다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등교하자마자 말 잘하는 아이가 특유의 효과 음향을 넣어가며 열심히 어제의 그 장면을 재현했다. 또 누군가는 그것이 발칸포였으며 서울 시대에 잘못 들어온 헬기 같은 것에 더 들어오면 진짜로 쏴서 격추시킨다는 경고 사격을 한 것이라고 나름 전문지식을 뽐냈다. 우리에겐 그 말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밤하늘의 발칸포 사격이라는 멋진 경험을 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발칸포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물건인지는 관심 밖이었다. 그저 지친 우리들에게 웃음, 멋짐을 준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한참이 지난 후 발칸포의 무서움과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알았을 때 내가 느낀 부조화는 교장선생님의 엄숙한 훈화와 그 뒤로 펼쳐진 이름 모를 군인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에서 느낀 그것과 다른 것 같지 않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불편하였지만 그렇다고 내 추억의 가치는 변하진 않았다. 창덕궁에 어울리지 않는 군사시설이 오히려 그 시절 힘든 우리들에게 잠깐의 여유를 준 것은 분명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학생들과 생활하다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에 웃는 학생들을 볼 때가 자주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왜 웃었는지 굳이 물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힘듦을 잠시 위로해 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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