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요한 순간은 학교와 시험지 밖에 더 많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학교에서는 영화를 보여주곤 했다. 대부분 반공영화 아니면 정부를 홍보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학교에서 단체로 본 영화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단 한 편의 영화를 제외하고.
시험이 끝나는 날 개봉관에서 영화를 볼 것이니 돈을 내라는 선생님의 말에 난 짜증이 났다. 오백 원에 두 편을 볼 수 있는 동시상영관 영화에 빠져있던 나에게 이천 원은 정말 내기 싫은 돈이었다. 그것도 한 편 밖에는 안 하는데. 그래도 내라니 낼 수밖에 없어 투덜거리며 냈다. 시험이 끝나고 우린 줄지어서 영화관이 있는 종로 4가(?)까지 걸어갔다. 꽤 오래 걸어서 도착한 곳은 일류 극장이 아니라 일류 극장에서 개봉하고 다음으로 상영하는 이류 극장이었다. 우리가 볼 영화는 ‘미션’이었다. 우린 무진장 실망했다. 그 당시 극장 간판에는 등장인물과 주요 장면을 조금은 과장해서 그렸는데 거기에 여자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린 이런 영화를 왜 보러 오느냐고 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불만을 너나없이 터뜨렸다. 아수라장 같은 영화관 안에 선생님들의 “교양 없는 새끼, 학교의 명예...” 뭐 이런 말과 욕설이 한참 있은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방탕하게 살 던 사람이 남미에 가서 폭포 너머에 사는 순박한 원주민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음악으로 선교활동을 하다 죽지만 그 원주민들이 강을 따라 내려오는 바이올린을 갖고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영화가 나에게 준 충격은 컸다. 특히 나약한 원주민에 대한 잔학한 폭력 그리고 거기에 굴하지 않는 주인공과 원망할 줄 모르는 원주민의 순박함 그리고 영화 전체에 흐르는 음악까지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영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불쌍한 원주민 같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무것도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사회, 국가의 역할, 인간의 본성, 잔인함 등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이후로 여러 번 이 영화를 보았다. 아직도 인간, 국가, 사회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직도 내 사고의 중요한 틀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수학능력시험이 얼마 전 끝났다. 수시에 합격해서 조금 여유가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아직 대부분의 학생들이 여전히 저마다 선택한 방법에 따라 입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도 힘들고 지친 시기다. 어쩌면 이런 학생들에게 영화나 뮤지컬, 연극, 콘서트 등을 보라고 하면 우리에게 그런 ‘사치’ 부릴 시간이 있느냐고 참 개념 없는 소리 한다는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0년 전 한 편의 영화가 준 충격이 살아가는 데 아주 큰 영향을 준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 ‘사치’의 시간이 이후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삶에 중요한 순간은 학교와 시험지 속이 아닌 계획하지 않은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 어쩌다 떠난 여행, 시간 때우기 위해 본 책, 어쩔 수 없이 본 영화 등에서 더 많이 일어난 것 같다.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험난한 고개를 넘은 이들이 이런 것들, ‘사치’를 부리기를 바란다. 그를 통해 어쩌면 시간 낭비를 할 수도 있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그 순간이 삶에 아주 결정적 순간이 될지를.
그런 것들의 가치를 다 떠나서 열심히 살아온 너희들은 분명 ‘사치’ 좀 부려도 된다고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사치’가 지금 너희들에게 꼭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