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고등학교 때 제일 싫어했던, 아니 못했던 과목은 영어였다. 영어 시간만 되면 정말 죽을 맛이었다. 1주일에 5~6시간 넘게 배웠던 것 같다. 내가 대학 입학시험을 볼 때는 전국의 학생들이 340점 만점의 학력고사를 봤으며 그중 50점이 영어 점수였다. 이러니 영어는 대학을 가기 위해 반드시 잘해야 하는 과목이었지만 불행히도 난 중2 이후로 영어를 못했다. 특히 문과라 수업 시간 중 영어 시간은 더 많았다. 3학년 때는 제2외국어 독일어 시간에도 영어를 배웠다. 아무리 배워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다. 영어를 포기했어도 다른 공부를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인내력 기르기만 열심히 해야 했으며, 알아듣는 척하는 고도의 연기력만 갈고닦고 있었다. 한 반에 나 캍은 아이가 절반은 훨씬 넘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날도 나름 열심히 연기 연습 중인데 수업 중이시던 선생님께서 나와 내 짝을 나와서 엎드려뻗치라고 하셨다. 우린 영문도 몰랐지만 바로 엎드려뻗쳤다. 선생님은 우리가 싹아지 없이 수업시간에 밥을 먹었다고 했다. 우린 먹지 않았다. 선생님은 당구 큐대의 뒷부분으로 우리 허벅지를 때리셨다. 우린 변명도 못 했다. 그저 맞았을 뿐이다. 서너 대쯤 맞았을 때 갑자기 선생님이 싹아지 없는 놈들이 꼭 겉멋만 들었다고 욕을 하시며 목걸이를 빼라고 하셨다. 난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았다. 난 목걸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당연히 내 짝을 가리키는 줄 알고 엎드려뻗친 채 내 짝을 봤지만 녀석 역시 나를 볼뿐이었다. 내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자 선생님은 그 큐대로 내 옷을 들었다. 그리고 옷을 벗으라고 하셨다. 난 순순히 일어나 옷을 벗었다. 그 순간 겨울 외투 속 안에 옷을 걸기 위해 사용하는 노란 쇠줄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을 선생님이 목걸이로 보았구나 하고 생각하여 선생님에게 목걸이가 아니라 옷 걸인 데요 했다. 맹세코 어떤 저항이나 선생님의 잘못을 지적하는 불경한 말투는 아니었다. 그냥 목걸이가 아니라는 사실만을 담백하게 전달할 뿐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변명한다고 엎드리라고 하고는 나를 더 때렸다. 이게 뭐지 싶었다. 친구는 5대 나는 도합 10대를 맞고 종이 살려주어 선생님이 나가고 나서야 나는 쩔뚝거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도대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먹지도 않은 것을 먹었다고 때리고 차지도 않은 것을 찼다고 때리고 하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고 때리고. 아이들은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라고 했지만 그 선생님이 아니라 정말 내가 개가 된 기분이었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습까지 힘들게 마치고 집에 도착한 내가 쩔뚝거리는 것을 본 엄마가 왜 그러냐고 했다. 난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했다. 그냥 위로해 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선생님 화나게 한 내 잘못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실수하도록 내 수업 태도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했다. 형도 그랬다. 정말 내 편은 하나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벅지의 진보랏빛 멍은 없어졌지만 내가 받은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독일어 선생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지 않은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