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벗어난 격려와 질책은 고칠 수 없는 역효과를 갖고 온다.
복학을 해서 가장 난처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였다. 원래 필요한 돈 이외에 복학생 선배라는 이유로 필요한 돈도 있었다. 특히 이런 돈은 부모님께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명색이 군대까지 다녀온 놈이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영원한 물주 작은 누나가 매형 몰래 용돈을 주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때 왜 아르바이트할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군대에 있는 동안 집이 이사해서 통학 시간이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부모님을 뵈면 뭐라도 해야 했다. 난 장학금을 받기로 했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면 충분히 가증하겠다 싶었다. 부모님의 부담도 덜어드리고, 후배들에게 폼도 잡을 수 있는 1석 2조였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강의를 열심히 들어야 하는데 난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틈만 나면 딴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그래도 장학금은 받아야 했다. 어떻게든. 한 번 결심하고 나니 더 절실해졌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 과목 중 한 과목이 문제였다. 몇 번을 읽어도 도대체 뭔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읽고 또 읽어도 짜증만 날 뿐이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후배들에게 물어봐도 자기들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막막했다.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 고등학교 때 사회 선생님에게 들었던 맥아더 이야기가 생각났다.
맥아더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다닐 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배웠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통째로 외워 시험을 봤고 너무 정확하게 정답을 적은 것이 이상했던 교수는 맥아더를 불러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적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맥아더는 “사실 몇 번을 읽어도 알 수 없어 책을 통째로 외웠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는 “실은 나도 그렇다네.” 했다는 이야기였다. 사회 선생님은 암기는 머리가 나빠도 노력하면 되는 것이므로 머리 탓하지 말고 노력하라고 이 이야기를 해주신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난 맥아더가 되었다. 맥아더처럼 무작정 외웠다. 외우고 또 외워서 나중에는 책을 보지 않고도 빈 종이에 책에 있는 그대로 적을 수 있었다. 시험을 봤고 그 과목 만점을 받았다. 그런데 시험 보고 첫 강의 날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영문을 몰라 당황한 나에게 교수님은 자신이 수년 동안 이 책으로 강의를 했는데 조사까지 똑같은 적은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셨다. 그 노력을 높이 사 만점을 주었다고 하셨다. 민망했다. 그래도 장학금을 받았다. 막판에 삐끗했지만 내 맥아더 따라 하기는 성공했다.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렸다.
교사가 되고 한 동안 나는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에게 나의 맥아더 따라 하기를 이야기해주었고 “너희들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노력을 안 해서라고. 나처럼 이해가 안 되면 무식하게 외워!”라고 격려하고 질책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때도 여느 때처럼 아이들에게 맥아더 따라 하기로 질책하고 격려 중 한 아이가 “선생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그래서 뭐가 남는데요?” 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했다. 맞다. 그렇게 외워도 공부한 것은 내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강의 관련 분야는 내가 절대로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남았다. 장학금은 얻었지만 그 강의를 선택하고 들었던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졌다. 장학금이라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해 잘못된 요령만 익혔다. 군대를 갔다 온 대학생이나 돼서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경험이라고 아이들에게 훈시(?)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 말을 믿고 열심히 외운 아이 중 실력이 향상된 아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라는 것에 질리지 않았을까 싶다. 가뜩이나 하기 싫은 공부를 무조건 외우라니 이 얼마나 무식한 말인가? 장학금, 성적이라는 눈앞의 목표에 대한 집착이 아이에게 공부를 더 멀리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공부라면 치가 떨리게 만든지도 모르겠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공부의 본질이 외우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 이해하는 것이라면 아이에게 배운 것을 소화할 시간은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상보다 느리게 이해하는 아이들에게 ‘맥아더 따라 하기’ 같은 성급하고 잘못된 격려와 질책보다는 그들이 그들만의 방법으로 공부를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천천히 와도 괜찮다고 기다려 준다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