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이 생기다.
제대 후 바로 복학한 나는 8월 말 졸업을 했다. 아들의 대학 졸업이라고 아버지는 결혼식 신랑처럼 머리를 했고 안 입던 양복을 꺼내 입으셨다. 어머니 역시 새벽같이 일어나 단골 미용실에 가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고운 한복을 입으셨다. 하지만 그때 찍은 졸업 사진 속 내 모습은 그렇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왠지 기가 죽은 모습이다. 졸업을 했으면 취업을 해야 하는 데 취업을 하지 못 했다. 취업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 채용은 겨울에 이뤄져 취업할 곳이 없었다. 교사 임용고시는 애초 볼 생각이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남자는 사립학교에 곧잘 취업이 되던 때였고 솔직히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래도 놀 수는 없었다. 신규 채용이 있는 겨울까지 뭔가 해야 했다. 이것저것 알아보다 학과 사무실에서 1개월 임시교사(지금은 기간제 교사) 자리를 추천해 주었다. 비록 한 달짜리였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더욱이 집 근처 여자중학교였다. 바로 가서 인사를 하고 다음 날부터 중2 국어 수업을 담당하기로 했다.
지금은 더 심해졌지만 내가 다닌 학교에는 남선생님이 나를 포함해 6명인가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나타난 남자를 남선생님들은 살뜰히 챙겨주셨다. 집들이, 2차 모임 등 아무튼 여러 술자리에 초대 혹은 끌고 다니셨다. 아이들은 나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아서인지 오빠처럼 잘 따라주었다. 순박했고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하루하루가 금방금방 가는 행복한 나날이었다. 이런 행복한 날이 사나흘 지났을 때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식을 한다고 했다. 40년 넘게 교직에 있다 퇴직하는 모습은 이제 막 교직에 들어선 내가 섣불리 상상할 수 없는 것이어서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화분 옮기기, 천막 치기, 의자 배치 등 힘쓸 일이 많았지만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퇴임식 당일이 되자 나는 몇 명 학생들과 함께 주차 안내를 맡았다. 다행히 운동장에서 퇴임식을 하여 퇴임식을 구경할 순 있었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국민의례 – 내빈소개 – 교장선생님 약력 소개 – 선생님들의 송별사 – 교장선생님 퇴임사 – 그리고 40년 세월을 증명하는 제자들의 회상과 축사가 이어졌다. 특히 제자들의 회상과 축사는 교직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오롯이 교장선생님만을 위한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두 눈을 감고 들으셨고 그 옆의 사모님은 눈물을 흘리셨다. 난 너무 부러웠다. 내가 저런 모습으로 퇴직할 수 있을까? 아직 제대로 취업도 못 한 나에겐 언감생심이었다. 애국가를 끝으로 모든 식을 마쳤다. 교장선생님을 환송하기 위해 우린 두 줄도 도열했다. 그리고 우리 줄 뒤로 교장선생님 40년 제자들이 섰다. 그들이 만든 긴 터널 속을 걸으며 교장선생님은 그날 하루 종일 참았을 눈물을 흘리셨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박수와 함께 교문을 나서 차에 오르면서 정년퇴임식은 끝났다.
교직에 들어선 지 며칠 만에 본 퇴임식은 바로 그 순간 내 꿈이 되었다. 제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교문을 나서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먼 훗날 내 모습이어야 했다. 교사를 해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쳐야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나에게 구체적인 꿈이 생긴 것이다. 30년 가까이 된 지금도 그 장면은 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있다.
그러나 나의 이 환상적인 꿈은 1년도 못가 깨지고 말았다. 다음 해 나는 운이 좋게도 울산에 있는 한 여고에 임용되어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환상적인 임시교사 1개월의 기억, 집에서 나와 사는 독립생활,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르는 아이들 모두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갔다 오니 교무실 이 웅성웅성했다. 선생님들은 일제히 창문으로 운동장을 가 밖을 봤다. 나 역시 영문도 모르고 운동장을 봤다. 별거 없었다. 그저 교장선생님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 말고는. 나는 선배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 선배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교장선생님 그만두고 가신대.” 아닌 밤중에 뭔 소린가 싶었다. 농담이겠거니 했다. 교장선생님이 어떻게 저렇게 퇴직하실 수 있나 믿어지지 않았다. 믿지 못하는 내게 선배는 좀 전 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돈 받았데. 돈 받고 입학시킨 게 걸렸데.” 불과 몇 개월 전 내 교직의 목표이자 꿈이 됐던 퇴임식을 본 나에게 돈 받고 학생을 입학시킨 것이 걸려 쫓기듯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파란 하늘 밑 잘 다듬어진 길을 걷다 쓰레기가 넘쳐 나는 후미진 골목을 걷는느낌이었다. ‘꿈의 흔들림’이라는 이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꽤 오래 걸린 것 같다.
교사 생활을 한 날보다 할 날이 많지 않은 요즘 가끔 나는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제자들의 따뜻한 축하는 못 받더라도 누가 볼까 도망가는 그런 모습은 아니고 싶다. 오늘 하루가 내 뒷모습을 결정함을 알기에 하루가 더 버겁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