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채용기

부정한 출발선에 서기를 강요하는 사회

by 이동수

임시교사를 마치고 형의 일을 도우며 교사 채용 공고가 나는 1월을 기다렸다. 힘들었다. 기다리던 1월이 되자 심심찮게 교사 채용 공고가 났다. 나는 신문에 공고를 보고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중 맨 먼저 연락이 온 곳은 서울 강남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였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서류통과자를 대상으로 적성검사를 실시했다. 적성검사라고 했지만 사실 아이큐 검사였다. 전공이나 교육학 혹은 상식 시험이 아닌 말 그대로 아이큐 검사였다. 국어 교사 약간 명을 뽑는 데 교실 두 칸에 응시자가 가득했다. 긴장, 두려움의 감정으로 받아본 시험지가 아이큐 검사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을'이었다. 열심히 본다고 아이큐가 달라질 리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봤다. 며칠 후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 학교에서 보낸 우편물이 있었다. 합격 통보인 줄 알고 흥분된 마음에 열어보았지만 “응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는 귀하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불합격 통보였다. 태어나서 떨어져 본 것은 처음 이어선지(대학은 미리 점수에 맞춰 지원했다.) 충격이 컸다. 부모님 보기 창피했고 죄송했다. 재빨리 통지서를 감췄다.

두 번째로 연락 온 곳은 ○○에 있는 예술고등학교였다. 서류 통과했으니 며칠까지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목욕하고 이발하고 옷도 세탁소에 맡겨 세탁하고 구두도 새로 샀다. 기대를 안고 찾아간 학교는 예고답게 크고 아름다웠다. 면접은 잘 되었다. 이것저것 묻는 데 나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긴장 속에서도 합격이라고 김칫물을 마실 정도였다. 그런데 면접 위원 중 한 분이 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했고 다른 한 분이 이어서 기부금을 낼 수 있느냐고 했다. 난 어이가 없었다. 돈 받고 교사를 채용하는 사립학교가 있다더니 내가 그 현장에 있구나 생각했다. “저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기부금을 낼 형편이 안됩니다.” “그러면 월급에서 일부를 얼마 간 기부해도 됩니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설마 했던 일을 겪으니 내가 그동안 너무 어리숙했나, 세상을 몰랐나 싶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난 교사가 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쫙 빼 입고 간 자식을 부모님은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다. 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냥 가보니 갈만한 학교가 아니라고만 했다. 이번에는 기대가 컸던 만큼 부모님의 실망도 컸다. 그래도 아무 말씀도 없었다.

세 번째 학교는 울산에 있는 여자고등학교였다. 너무 멀어 좀 머뭇거렸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여학교라는 환상도 있었다. 면접을 며칠 앞두고 다른 공고가 나온 것이 있나 확인하러 간 과사무실에서 최래옥 교수님을 뵈었다. 취직 여부를 묻는 교수님께 며칠 후 울산에 있는 여고에 면접 보러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같이 가자고 하셨다. 바쁘신데 괜찮다고 했지만 제자 취업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하시면서 부득불 같이 가신다고 하였다. 황송하고 감사했다. 교수님과 함께 이사장실에서 면접을 봤다. 이사장님은 서울에서 교수님이 직접 오실 정도면 선생님은 믿을 만한 사람임이 분명하다고 몇 마디 묻지도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채용하겠다고 하셨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제자 채용을 위해 함께 해주신 교수님은 나중에 내 결혼 주례도 봐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분인데 연락도 못 드리고 살고 있다. 참 짐승 같이 살고 있다. 부끄럽다.

면접을 보고 집에 와서 합격했다고 말했더니 부모님은 너무 좋아하셨다. 그러나 바로 혼자 어떻게 사느냐고? 방을 어떻게 구할지 걱정하셨다. 난 하숙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난 너무 좋았다. 드디어 독립하는구나, 내가 교사가 되는구나, 내 꿈을 이루는구나 싶었다.

울산에 내려갈 준비를 하는데 ○○고등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고는 경남에 있던 지방학교였지만 그 당시 앞서가는 교육방법과 환경으로 각종 매체에서 주목을 받고 있던 학교였다. ○○고 교감선생님께서 면접 보러 오라고 하셨다. 나는 감사하지만 울산에 있는 학교에 가기로 해서 면접에 갈 수 없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한 시간쯤 후 이번에는 교장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어느 고등학교인지 모르겠지만 ○○고에 와서 보고 선택하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갈 데 없어 초조하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었는데... 나는 교수님과 함께 면접을 본 이야기를 하며 ○○고가 좋은 학교인 줄은 알지만 신의 상 그럴 수는 없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그렇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시면서 열심히 교사 생활 잘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울산에서 현재 있는 학교로 옮길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안양에 있는 ○○고에서 3월 15일까지 기다려 줄 테니 오라고 했지만 먼저 합격 연락을 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를 선택했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의 인생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울산에 있는 학교에서 3년, 현재 학교에서 23년. 26년째 교직생활을 하며 가끔 현재 학교생활에 회의감이 들 때면 그때 그 선택들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내 마음속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삶은 또 어디에 있는지가 무엇을 하느냐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원하는 곳, 원하는 일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여전히 고민스럽다. 이제 그럴 기회가 예전만큼 없을 것 같은데. 고민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도 삶이 가르쳐 주었지만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 더 미리 고민한다. 그래서 머리가 빠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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