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야, 학교 가자!

학교 적응은 힘들어.

by 이동수

“오늘도 지각이야!”

조회를 마칠 때쯤 들어오는 선화를 보자 난 정말 화가 났다. 거의 매일 지각 하지 말라고 좋게도 말해 보고, 성질을 버럭버럭 내며 악도 써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며칠 전에는 때리기까지 했다. 이젠 ‘나’에 대한 도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도 선화 때문에 또 악으로 시작하는구나. 한참 악을 쓴 후 “왜 늦은 거야?”라고 물었다. 하지만 난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역시 “늦잠 잤어요.” 한다. 어제도, 그 전날에도 또 그 전날에도 들었던 대답이다. 또 화가 난다. 얘는 분명 나에게 도전하는 거다. 내가 언제까지 참을 것인지 테스트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땅히 다시는 도전하지 못하게 밟아줘야지.”라고 생각한 나는 엎드려뻗치라고 하고는 엉덩이를 3대 때렸다. 그리곤 네 속에 있는 게으름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거대한 목표를 반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로 밝혔다. 최대한 위엄 있는 표정과 행동으로 다시는 정말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아이를 들여보냈다.

교무실로 돌아와서도 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악쓰고 때리고... 아침부터 도대체 뭐 하는 건가 싶다. 더 걱정인 거는 다시는 지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내일도 지각을 할 거 같다는 거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뭔 대책이 없을까 고민하다 선화와 다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선화야, 너 왜 지각하지 않겠다고 하고 왜 지각하니?”

“선생님, 정말 지각 안 하려고 했는데... 등교 시간까진 시간이 조금 남아 앉아 있었는데 깜빡 잠이 들어버렸어요. 깨고 보니 이미...”

“엄마, 아빠는? 너 안 깨워 주니”

“아빠는 2교대 근무라 하루 들어오고 하루 안 들어와요. 들어오신 날도 제가 등교하려고 할 때는 주무실 때에요.”

“엄마는?”

“엄마는 저보다 훨씬 일찍 나가세요. 엄마가 나가시면서 밥 차려놓고 저를 깨우세요. 근데 엄마의 출근 시간이 너무 빨라 엄마가 나가고 나면 다시 잠이 들어요”

“제때 깨워줄 사람이 없어서 지각한다고...”

“네.”

“그럼 아침마다 내가 깨워줄게.”

“어떻게요?”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선생님이 네 집에 가서 초인종 누를게. 그럼 늦지 않겠지?”

이렇게 선화와 나는 등교 계약을 맺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양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선화 집에 가서 선화를 깨웠다.

“선화야, 학교 가자.”

이렇게 한참을 외치면 선화가 집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를 끌고 선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교문이었다. 이렇게 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선화가 더 이상 오지 마세요. 이제 습관이 돼서 저 혼자도 잘할 수 있어요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화는 다른 아이들로부터 질투를 받고 있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아냐 아직 습관 안 됐어. 며칠 더 해.”
“아뇨, 선생님 저 믿어주세요.”

믿어달라니 또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아침마다 학교와는 반대 방향인 선화네 집으로 가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동행 등교는 끝이 났다.

한 2주 정도 지났을 때 걱정했던, 아니 최악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선화가 학교에 오지 않은 것이다. 아예 등교하지 않았다. 전화도 안 받아서 직접 집에 가보았다. 없었다. 퇴근 후 다시 가 선화 엄마를 만났다. 어제 학교 안 다닌다고 하더니 집을 나갔단다. 들아오면 연락 달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왔다. 선화가 학교에 다시 나타난 것은 약 한 달 후였다. 거의 매일 전화와 몇 차례의 가정 방문에 지쳐 갈 때쯤 나타난 선화는 자퇴하겠다고 나타났다.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한 상태였다.

“왜? 학교 다니기 힘드니?”

“아니요. 도저히 3년을 다닐 자신이 없어요. 취직해서 돈 벌거예요.”

“그럼 중졸로 살거니”

“아뇨. 내년쯤 검정고시를 볼 거예요. 그리고 대학도 갈 거예요.”

며칠을 설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교감선생님께 보고했더니

“이선생, 내가 들은 이야긴데 너무 커 다른 죽순(竹筍)의 성장을 방해하는 죽순이 있어 이를 잘라버리면 다른 죽순 중 하나가 또 문제 죽순이 된다는군. 그러니 그 아이를 자르는 것은 그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 아닐 거야. 좀 더 잡아 봐요.”

내가 어떻게 했는데... 매일 집으로 찾아가서 등교시켰고 또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이 전화를 하고 집을 찾아갔는데... 교감선생님이 내 노력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았다. 서운했다. “다시 설득해 보겠습니다.” 했지만 감정을 숨기진 못했다.

퇴근을 선화 집으로 했다. 하지만 또 설득에 실패했다. 제자들 중 첫 탈락자가 나오는구나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우며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알 수 없었다. 결국 선화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내가 선화에게 한 행동과 말들이 선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은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학생을 위한 선생, 학생을 아끼는 선생인 나의 노력은 아이들이 거부할 수 없는, 거부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아이가 한 말보다 내가 한 말이 더 많다.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명확히 기억했다. 아이를 끊임없이 “왜?”로 폭격했다.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힘내라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지친 선화에게 학교가, 아니 내가 쉼터가 돼주지 못하고 내가 한 행동만 자랑하고 인정받으려고 했다. 지독한 자기애다. 그때 내가 선화 얘기를 더 들어주었다면 선화가 학교를 그만두었을까? 어쩜 아닐 지도 모른다.새삼 선생이라는 자리가 무섭고 중하게 느껴진다. 선화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보고 싶다. 미안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교장선생님의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