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생리해요.(1)

by 이동수

나를 신처럼 믿는 아이들과의 학교 생활은 너무 행복했다. 계획하지 않아도,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속된 말로 잘 돌아갔다. 1년의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다음 해 나는 문과 특별반을 맡았다. 학교에서 나와 아이들의 케미를 좋게 보고 큰 기대를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반은 성적순으로 뽑았다. 공부를 알아서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 난 더 할 일이 없었다. 물론 그중에도 말썽쟁이는 있었다.

○○는 매일 부산에서 학교까지 1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통학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각 한 번 없던 아이였다. 그러던 아이가 9월쯤 되자 지각이 잦아지고 결석을 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유를 물으면 너무 피곤해서 늦잠을 잤다느니, 아팠다느니 하는 이유를 들었다. 학부모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난 몸이 문제가 아니라 ○○이가 보이는 무기력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기력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몇 차례 이야기했지만 그때마다 통학이 힘들어서라고 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이가 결석을 했다. 어머니는 일요일 나가서 집에 안 들어왔다고,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고 친구 집에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전화만 왔다고 울면서 이야기했다. 친한 아이들을 통해 알아보았지만 있는 곳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떤 남자랑 연예 중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막막했다. 친한 아이들에게 혹시 연락 오면 선생님에게 꼭 전화하라고 하라고 단단히 당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주일 넘게 시간이 흐른 후 아빠에게 끌려서 ○○이가 아주 짧은 머리로 등교를 했다. 딱 봐도 아빠가 머리를 깎아버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인사하는 ○○이를 교실로 보내고 ○○이 아빠와 상담실에서 이야기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게 늦둥인데 귀여워만 하다 보니 사리 분간을 못 합니다. 중학교 친구에게 부탁해서 찾았습니다.”

“아닙니다. ○○이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아이입니다. 이번 일을 잘 극복하면 더 나은 ○○이가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부산 명문고인 ○○고 국어선생입니다. 제 아이도 제대로 못 키우면서 누굴 가르친다는 건지 교직에 회의감이 듭니다.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50대 후반의 선생님이 이제 2년 차 선생인 나에게 자괴감을 고백하는데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섣부른 위로마저도 실례일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님에게 ○○이가 곧 좋아질 거라 믿으시라고만 했다.

아버님이 가시고 ○○이와 마주 앉아 학교에 오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예상과 다르게 너무 술술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다. 부산에서 나이트클럽에 갔다 만났는데 나이는 21살이라고 했다. 고2가 나이트클럽에 간 것도 문제지만 학생이 아닌 남자와 사귄다니 큰 문제였다. 학교에 오지 않는 동안 남자 친구 자취집에 있었다고 했다. 더 물을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학교 잘 다닐 거예요.”

“남자 친구 하고는?”

“헤어졌어요.”

“왜?”

“자꾸 이상한 걸 요구해서요.”

나는 ‘이상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총각 선생님이 고2 여학생에게 묻기에 민망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여선생님에게 부탁해 알아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를 보호해야 했다. 그러려면 아는 사람이 적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와 나는 남자 친구 집에서 잤다는 것과 기타 등등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학교에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가출한 것으로 이야기해서 징계 없이 넘어갔다. 그런데 얼마 후 야간자습시간에 ○○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왜?”

“선생님, 저~~ 이번 달 생리를 안 해요...”

뭔 소린지 몰랐다. 그래서 ○○이를 빤히 쳐다보니 남자 친구와 관계를 가진 후 생리를 안 한다고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돼서 죽겠다고 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참을 있다 부모님은 아시냐고 물으니 맞아 죽을까 봐 말 못 했다고 했다. 그럼 일단 어머니께 선생님이 말씀드릴 테니 이번 주말 엄마랑 병원부터 가보라고 했다. ○○이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오랜 시간 다른 방법이 없음을 설득 끝에 동의했다. 그래도 섣불리 전화를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성문제를 감당하기엔 아직 나는 너무 어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틀이 지났다. 오늘은 꼭 연락해야겠다 결심하고 출근을 하자마자 ○○이가 찾아왔다. 겁이 덜컥 나서 아이의 얼굴부터 살폈다. 다행히 신난 얼굴이다. 일단 안심이다.

“왜?”

“선생님, 저 오늘 생리해요.”

정말 기뻤다. 아직 철 모르는 아이, 늦게 난 아이 때문에 교직 아니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아빠, 그리고 성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신출내기 담임. 모두를 위해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때 성적 일탈을 한 여학생을 보는 시선은 카가웠으며 학교는 가혹했다. 한 번의 실수로 많은 기회를 뺏기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부모님께 끝까지 이야기 안 한 것이 잘한 것인가 모르겠다. 벌써 ○○이가 결혼했다면 그때 자기만 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는 시간이 흘렀다. ○○이와는 졸업 후 연락이 끊겨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도 자신을 좀 더 사랑하는 ○○이로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또 늦둥이 딸아이의 머리를 깎는 아빠의 눈물과 자괴감을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가 보고 싶다. 또 감추기에 급급했던 내게 ○○이는 뭐라고 이야기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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