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가족 중에 담석 있으신 분 있으세요?"
의사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볼 줄도 모르면서 그의 손끝에 따라 변하는 CT 사진을 초조하게 보던 나는 더 겁을 먹었다.
"아버님께서 담석이 있었고, 담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쓸개에 담석이 있네요. 아프지 않으세요. 가족력도 있으시니 각별히 더 조심하셔야겠어요."
"소화가 좀 안 돼서 그렇지 아프진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간수치도 안 좋고 혈압도 높으시니 일단 살을 빼시고... 지방이 많은 음식은 피하세요. 아프지 않다고 하시니 지금은 아니지만 쓸개는 결국 제거해야 해요. 그전까지 일단 약 드시면서 6개월마다 CT 찍어 관찰하죠. “
집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쉬 진정되지 않았다. 마흔을 넘어서면서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지만 이번처럼 심란하기는 처음이었다. 쓸개에 생긴 담석을 제거하고, 담도암 진단을 받고 3년 동안 앓다 돌아가신 아버님 모습이 더 선명히 떠올랐다. 아내는 이제부터라도 식습관 바꾸고 운동하면 괜찮다고 우울해하는 나를 위로했지만 난 아니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온전히 그 맛을 즐기기 어려웠다. 사는 재미가 없었다. 건강이 흔들리니 아빠, 남편, 교사라는 책임이 더 무겁게 다가왔고 힘이 들었다. 별일 아닌 일로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일도 잦아졌다. 그렇게 난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마지못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한 구절이 "쿵"하고 다가왔다. 남자라는 이유로 마음껏 살아보지 못한 시절을 아쉬워하는 노래였다. 노래를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전에 분명 들어본 노래였다. 하지만 그날처럼 내 노래구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던 노래였다. 그 당시 내 마음이, 몸이 그 노래를 원했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그 노래를 찾고 수도 없이 다시 들었다. 자연스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내 기억 속 어두운 부분, 밝은 부분이 뒤엉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다. 떠올릴수록 괴로운 기억, 잊을까 두려운 기억에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한참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다 문득 내 기억 대부분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것에 놀랐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해서 16년,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교사로 26년을 보냈으니 모두 더 하니 42년을 학교에서 보낸 것이다. 그러니 기억 속 공간의 대부분이 학교인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었다.
부끄러웠고 때론 지워버리고 다시 살고 싶은 기억도 모두 버릴 수 없었다. 잊은 줄 알았던 눈빛, 아련한 설렘이던 미소, 그리고 여름 향기 같은 사람들.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소중했다.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대로, 아픈 기억은 아픈 대로 남기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날부터 난 지난 일을 적기 시작했다. 한동안 나를 허무하게 때론 공포스럽게 만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조금은 사라졌다. 그래서 더 열심히 썼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나의 기억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달라진 거라면 오늘 하루가, 만남이, 그리고 내가 한 생각들이 미래의 나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신경 쓰며 산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면서 어쩌지 못하는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만남을 위해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나는 기억 여행자다. 나는 내 삶을 기록하는 작가다. 이 여행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이 기록이 언제 끝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재미있는 작업을 통해 나는 나의 삶을 지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을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