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선택이 나를 만든다.
대입 시험을 마치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틀어준 영화를 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울산에서 3년. 이 아이들은 나의 첫 제자였고 전부였다. 이 아이들은 나와 같이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이다. 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쭉 담임을 맡고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다른 아이들은 한 번도 가르친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와 아이들은 모두 같은 처지였던 것 같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에서, 지도에서 본 것이 전부인 곳에서 제대로 된 실력이나 노하우도 없었던 나와 전기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주변의 눈총과 무너진 자존심 속에서 후기 고등학교에 다녀야 했던 아이들은 모두 결핍의 상태였다. 그리고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에게 더 많이 의지했다.
이런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상상하기 어려웠고 해 나갈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만남이 내 뜻과 상관없이 다가온 운명이었듯 헤어짐 역시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었다. 또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힘든 것만큼은 아니지만 또 한쪽으로는 새롭게 맡게 될 다른 아이들에 대한 기대 역시 조금은 있었다.
새 아이들을 맡기 전에 미래를 결정하고 싶었다. 울산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아니면 연고지가 있는 서울 근처로 갈 것인가 결정하고 싶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있기보단 결정을 하고 그에 따라 올인하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아내의 의견을 물으니 아내는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또 내 소개로 역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내려와 같이 근무하고 있던 대학 동기와도 이야기했다. 그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단지 그는 울산에서의 생활에 좀 더 만족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첫 제자들을 졸업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하겠다고 했다.
일단 이력서를 내보기로 했다. 이력서 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니 서류 통과하면 그때 더 고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나의 행동은 사실 이미 떠나기로 결정한 후의 행동이었다. 단지 떠날 곳이 정해지지 않은 것뿐이어서 고민했던 것이다.
며칠 후 서류 합격 연락을 받고 면접을 보러 가는 버스에서 보이는 학교 주변은 논과 밭뿐이었다. 울산은 비록 지방에 있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중공업 도시답게 아파트와 빌딩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런데 학교가 있는 곳은 읍소재지였는데 그곳 역시 전형적인 시골 촌읍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내를 생각해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적잖이 실망했다. 학교 소재지가 경기도지만 서울과 가까운 곳이니 도회적이고 각종 편의, 문화, 복지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라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면접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들어간 다방(?)에서 아내와 난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여기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가니 필기시험을 보라고 했다. 사전 예고가 없어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보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면접을 보았다. 그런데 면접관 중 한 분이 눈에 띄었다. 흐트러진 점퍼 차림으로 약간은 거만스러운 자세로 중학교에서도 잘 가르칠 수 있냐고 물었다. 난 사립 재단에 으레 있는 이사장 친척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또 이 학교 다닐 생각이 없으므로, 고등학교나 중학교가 차이는 있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같으므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이 중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
면접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가는 6시간 가까이 아내와 나는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가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지금 옮기지 않으면 울산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강박감이 무겁게 나와 아내를 짓눌렀다.
이틀 후 학교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난 떠나기로 했다. 아이들이, 울산이라는 도시가, 선생님들이 너무 좋았지만 왠지 내가 계속 있을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학교로 출근하여 교감, 교장, 사무국장님을 만나 학교를 떠나게 됐음을 말씀드렸다. 사무국장님(이사장님 동생)은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 이사장님이 마음이 너무 많이 상하셨다고 하셨다. 나를 믿고 대학 동기를 채용하고 특별반 담임을 시키고 했는데 어찌 ‘배신’할 수 있는지, 교사로서 그러면 안 되는 데 그 사람 정말 못된 사람이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사장님이 나를 특별히 신임하는 줄은 알았지만 솔직히 서운하시겠지 하는 정도였지 ‘배신’이라고 생각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 변명하자면 그 당시 나는 너무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무국장님 말씀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무릎 꿇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대학 동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니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나는 이사장님을 끝내 만나 뵙지 못하고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받아주신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이사장님!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놈이어서 이사장님의 은혜도 배신한 정말 나쁜 놈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지금 나는 그 당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 왜 그리 쫓겼는지, 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나를 믿어준 사람에 대해 좀 더 세심히 생각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 그리고 가끔 내가 그 당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