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화낸 이유?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다루는 이상한 방법

by 이동수

담임선생님의 총애를 받던 그 시절 하루는 선생님께서는 나와 몇 아이들을 기술산업실로 부르셨다. 그리고는 며칠 전에 본 기술산업 시험의 학생 답안지를 채점하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 학생들은 지금처럼 학생들이 OMR카드에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갱지에 문항별로 그려진 1번에서 4번에 해당하는 칸에 답을 표시를 하였다. 나와 아이들은 기술산업 시험을 잘 보는, 아이들을 때리는 아이들이었으므로 선생님의 말씀을 우리가 따르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너무 바쁘신 선생님을 위해 우리가 아니 적어도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뭔지 모를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우리는 선생님이 알려주신 정답에 따라 학생용 답안지에 정답 칸을 오려내 모범 답안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범을 몇 번 본 후 그대로 모범 답안지를 학생용 답안지에 대고 구멍과 일치하는 학생 답안에 숫자를 세며 동그라미 표시를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를 곱해 연필로 점수를 학생 답안지에 적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러 우리의 작업(?)이 익숙해졌다고 판단하신 선생님께서는 산도 같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몇 개 주시고는 나가셨다. 알게 모르게 들떠 있던 우리는 선생님이 나가자 더 자유스러워졌고 자연스레 서로의 채점 결과가 궁금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서로의 점수를 물어봤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서로의 점수를 4점씩 올려주기로 했다. 학생 답안지에 원래 칠했던 것에 “X”표를 하고 정답 칸을 다시 칠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서로 공평하게 한 문제씩 올려주니 비밀이 세나 갈 염려도 없는 완전 범죄였다. 정말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는 의기투합한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은밀하고 신속한 일처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후 선생님이 돌아오셨고 우린 우리의 숙제를 자랑스레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잘했다고 하시면서 너희들이 시험 채점한 것은 비밀이라고 하셨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모르는 비밀을 우리와 선생님만이 공유하는 더 끈끈한 사이가 된 것 같아 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혹은 싫어하는 아이들 얼굴을 보며 그 아이에게 닥칠 미래를 상상해 보는 즐거움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를 가자마자 우리들은 쌍욕과 함께 기술산업실로 끌려갔다. 나는 선생님에게 끌려갈 때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고소해하는 아이들의 표정 때문에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기술산업실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순서대로 맞았다. 이유도 몰랐다. 그냥 아무 데나 맞았다. 선생님이 때리는 대로 한참을 맞았다.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아이, 정신없이 우는 아이, 심지어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는 친구도 있었다. 한참을 때리다 지치신 선생님은 우리에게 빤스만 입고 원산폭격을 하라고 하셨다. 그때까지도 우린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선생님은 네들이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시고는 나가셨다. 선생님이 나가셨어도 우린 그 자세를 풀지 못했다. 우린 선생님을 저토록 화나게 한 정말 나쁜 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세에서 우린 서로 잘못한 것을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서로 시시콜콜한 잘못까지 고백하고 들추어내었지만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잘못한 것을 찾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린 초조했고 뭐든 만들어 내야 했다. 모르겠다고 하면 더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1인 우리가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어쩌지 못하는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난 선생님은 꿇어앉으라고 하시고 뭘 잘못했냐고 물으셨다. 우리가 아무 대답도 못하자 선생님은 웃는 건지 화내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너희들이 시험성적을 조작하는 인간 같지 않은 짓을 했다고 하셨다. 본인이 우리에게 채점을 맡기기 전 우리들의 답안지는 미리 채점을 해놓으셨는데 니들 모두의 성적이 4점씩 올라갔다는 것이다. “내가 그것도 대비해 놓지 않았을 것 같아! 날 뭘로 보고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왜 기술산업실로 끌려와 맞고 빤스 차림으로 원산폭격을 하는 중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죄송하다고 울면서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이제 잘못을 알았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며 우릴 엎드리라고 하신 후 빗자루로 우리의 허벅지를 또 때리셨다. 우린 힘 없이 쓰러지며 죄송하다고만 했다. 정말 죄송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때리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너희들은 이걸로 안돼~ 너희들은 개망신을 당해봐야 해!”하며 나가셨다. 그리고는 교무실 종순이 누나, 그 당시 내가 다닌 학교는 교무실 앞에 종을 메달고 종을 쳐서 시종을 알렸다. 교무실에서 잡일을 하고 종을 치며 학비를 벌어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누나를 우리들은 누나를 종순이라고 불렀다. 그 누나를 데려온 것이었다. 빤스만 입고 무릎 꿇고 있는 우리들 앞에... 누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기술산업실로 들어오다 우리를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고

“똑바로 봐라. 잘 봐 둬야 이런 인간 같지 않은 놈들 안 만나지.”라는 선생님의 강권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점수를 조작했다는 부끄러움, 선생님을 실망시켰다는 죄스러움이 없어지고 오직 빤스만 입은 내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 더 큰 창피를 막기 위해서라도 나는 빤스를 두 손으로 가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창피한 거는 아는군.”하며 만족해하셨다. 누나를 돌려보낸 후 선생님은 당신이 철두철미한 사람이며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 절대로 속이려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반성문을 쓰라고 하셨다.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지만 남자만 있던 학교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동경의 대상이었던 누나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이 일은 내가 받은 최초의 성교육이었다. 그리고 이 성교육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가졌던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선생 돼서 너처럼은 안 해!”라는 반감을 갖게 되었다.

그때 내가 어떤 반성문을 썼는지 모르겠다. 분명 쓰긴 썼다. 하지만 의도적인 것인지, 시간이 흘러서인지 모르겠지만 반성문의 한 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선생님이 진짜로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옳지 않은 짓을 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을 얕봐서라고 생각해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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