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만 한다
그동안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글을 쓰기를 미루어왔다. 나는 원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이유를 덧붙이며. 기분이 내키지 않는데 무슨 글자나 문장이 곱게 쓰여질 리 없다 생각했다. 하루에 한 편씩 쓰겠다는 호언을 한 때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하루에 한 편씩. 그게 무슨 의미일까 곱씹었다. 아마도 어떤 한 가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나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일단 내게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고 보는 것.
꾸준함이 그런 거라면 나는 그것과는 아주 먼 거리에서 살아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아이. 였다는 것을 이 노골적인 문장을 쓰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적어도 그런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결국은 달아 보이는 사탕만을 좇아왔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실천되지 못했던 수많은 과거의 페이지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내키지 않는 기분일 때는 어떤 것도 시작조차 못하게 되는 특수 체질인 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냥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아주 철저한 자기합리화로, 혹은 자기 최면으로 나를 동여매고 살아왔음이다.
눈보다 발이 빠르다는 말이 있다. 눈으로 보면 너무 멀어서 언제 가나 싶지만, 막상 발을 옮겨 걸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다는 뜻이다. 여태까지 나는 발은 가만히 땅에 붙박은 채로 눈으로만 세상을 재오지 않았나 싶다. 내 멋대로 재고 대보면서, 착시현상을 실제라고 믿으면서. 움직여야만 딸 수 있는 저 포도들은 틀림없이 시다고 단정 지으면서 당장 내 손에 잡히는 것들만 하려고 들었다.
일단 발을 떼어야만 한다. 발을 옮기는 일은 고되다. 입력은 시각이었지만 환각으로 출력된 믿음들이 이미 너무 많아 내가 디딜 저 지면이 갑자기 푹 하고 꺼지진 않을지 걱정하는 일을 그만둘 용기도 필요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용기를 내어 걸어야 한다. 일시적인 자기 위안이 아니라 꾸준함이 몸에 밴 후 오게 되는 성취감을 맛보기까지가 관건이라는 걸 잘 안다. 그 문턱을 넘기가 너무도 힘들었으니까. 순간의 달콤함에 또다시 주저앉기가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내일도 나의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매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나는 그저 확률을 높이기 위해 어떤 변명거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걸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 그럴 기분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그런 결과를 도출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자명하다. 그런데도 난 믿지 않았다. 내 감이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신인 줄 착각하고 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오만이 깃들어 있었는지도. 그렇게 내 세상 속에 가둬놨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