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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Nov 03. 2015

의무 vs 선택

선택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니

일을 대충하거나 자꾸 미루는 사람일수록 모순적이게도 대부분의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 혹은 완성해야만 하는 의무로 느끼며 산다. 그들은 매사를 ‘요구받는다'고 느끼면서 미루고 대충하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저항'이라 한다.

“슬럼프 심리학” 한기연, 60쪽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저자가 마치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간 줄 알았다. 그랬다. 나는 모든 일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브런치를 쓸 때도 "소제목을 입력하세요"라고 써있어서 왠지 소제목을 써야만 할 것 같다. 시간을 질질 끌며 빈둥대면서도 '해야 하는데'라는 강박과 붙어 살았다. 공부를 할 때는 물론이요 아주 사소한 일들―예를 들어 책상에 있는 프린트물 몇 장을 정리한다든지―까지도 의무라는 이름으로 나를 옥죄어 오는  듯했다. 이런 강박은 나를 굉장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부정적으로 이끌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평소에 어떤 일을 벌이기는 좋아하지만 그 끝을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 일을 막 만들 때에는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선택하고 결정한다. 하지만 결정하는 순간 바로 나는 그 결정에 얽매이기 시작했다. 자연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더라도 곧 '해야만 하는' 압박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쉽게 지치고 흥미를 잃어갔다.


아주 최근에 신랑과 함께 내 진로 문제를 논의할 때의 일이다. 신랑이 갈피를 잘 잡지 못하던 나에게 어학공부를 권했다. 나 또한 최근 들어 어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감하여 실행을 고려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벌써 숨이 막혀왔다. 물론 그는 나에게 잘 생각해보고 선택하라고 했지만, 은연 중에 나에게는 그의 의견이 '선택지'가 아니라 앞으로 잘 해내야만 하는 의무로 둔갑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어디까지나 그의 의견일 뿐이고 무엇을 하든 결정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숨통이 트이고  다시 어느 정도 적극적인 태도로 전환할 수 있었다.


위 책에 의하면 그와 같은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은 일 자체를 자신의 가치와 결부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일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은 곧 일에 대한 비난을 듣게 되면 자기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생긴다. (나를 포함한)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비난을 방지하기 위해 일을 아예 하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판단을 보류하게 만든단다. 이와 같은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은  일일뿐이요, 나의 존재에 따로 얹는 것이고 존재가치 자체를 흔들지는 못한다는 인식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일을 실수하거나 잘못 하면 어떤가, 일은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마인드를 갖는 연습부터 하자.



ps. 이 책을 권해준 나의 그대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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