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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E리제 Oct 10. 2015

축제

03. 각자의 축제

    지난 토요일 우연히 남편과 산책을 나간 길에 우리 동네 먹자골목에서 이틀 간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걸걸한 남자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저쪽 어딘가에서 왕왕거리기에 집회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갈 수록 들리는 소리의 종류가 더욱 다양해져 예상이 빗맞았음을 직감했다. 쿵짝쿵짝 거리는 소리, 평소와 달리 길가에 줄줄이 주차해 놓은 차들,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인파! 아주 어린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란 사람들이 모두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맨 처음 우리 부부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맛있는 먹거리였다. 찐만두부터 시작해서 문어 숙회, 낙지구이, 다양한 종류의 전, 타코야끼, 케밥 등 골목마다 평소에 잘 보지 못했던 매혹적인 메뉴의 포장마차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받고 있었고 기존에 있던 가게들도 문정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 동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나 싶을 만큼 가게마다 손님들이 가득했고 골목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더 들어가보니 거리에 설치된 무대만 이쪽에 1개 저쪽에 1개, 총 2개나 되었는데  그중 한 곳에서는 고등학교 춤 동아리 학생들로 보이는 팀이 연이어 수준급의 공연을 하고 있었다. 무대 앞에는 서서 공연을 관람하는 인파도 상당했다. 축제 구역은 꽤 넓은 편이어서 골목 골목마다 새로운 풍경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 바퀴 돌아보다 보니 재미있는 특징이 있었다. 축제 이름은 하나이지만 각자가 즐기고 있는 축제 방식은 모두 달랐다. 특히 연령 별로 그 취향이 확실하게 갈렸다. 어린이들은 놀이터 근방에 설치된 간이 놀이기구와 놀이공원에 밀집되어 있었다. 바이킹을 비롯하여 상하좌우로 회전하는 다람쥐통 등 의외로 고난도의 놀이기구도 있어서 일부 청소년도 함께 볼 수 있었다. 반면 청소년들은 주로 타코야끼같은 간식류 포장마차 앞이나 무대 앞쪽에 포진하고 있었다. 장년층은 대부분 가게 안이나 술을 파는 포장마차에 앉아 웃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르신들은 저쪽 골목 어귀에 설치된 각설이 공연장 주변에 빙 둘러 앉아 트로트 노랫가락에 흥겹게 박수를 치고 계셨다. 아마 처음 들었던 걸걸한 목소리는 각설이의 것이었나 보다.


    하나의 축제지만 각자가 즐기는 축제는 모두 달랐다. 각각의 구역마다 실제로 어떤 다른 색깔을 띠는 듯했다. 각설이 공연장이 보라색이었다면, 놀이터는 초록색, 무대는 하얀색, 가게는 백열전구 덕분인지 튀김이나 전 때문인지 노란색. '너무 가까이 보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마침 돈을 들고 나오지 않아 축제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지 못한 덕분에 각각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색에서 다른 색으로 건너가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다른 세상을 꾸리고 산다는 사실을 이렇게 실감한 것은 처음이다. 그렇다. 뒤집어보면 각자의 축제일 수 없는데 모두의 축제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신기하고 덩달아 신이 나는 저녁 나들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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