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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얼 May 09. 2016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5.5

<선셋 송>, <선탠>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선셋 송Sunset Song│테렌스 데이비스 (Terence DAVIES)│UK, Luxembourg│2015│135min│DCP│color│장편│Fiction



고단한 스코틀랜드 시골의 삶을 감내해야만 하는 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 현존하는 영국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루이스 그래식 기번의 시적이면서도 동시에 통렬하게 사실적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스포일러 있음)


아름다운 스틸샷과 trailer에 마음을 빼앗겨 선택했다.

<해어화> 때도 그렇고 이런 시대물은 어쩔 수 없이 내 눈길과 손길이 가게 한다.

선택을 참 잘했다고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한 여자의 일생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하지만 이렇게 길어야 했을까.

점핑이 너무 많아 붕 뜬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뭘 얘기해야 할 지 모르겠는 느낌도 받았다.



삶과 함께 많은 사건을 겪어가며 크리스도 자라난다.

교사를 꿈꾸던 소녀였던 크리스는 삶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어느새 삶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녀의 삶엔 즐거웠던 기억과 잊고 싶은 기억이 공존한다.

영화가 끝나며

기억 하나면 언제든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

라 말한다.

우리 모두의 결혼식도

연애 초기의 설렘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다.

다정하던 이안까지 망가뜨렸다.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는 우리에게 기꺼이 파괴될 것을 요구한다.

나라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모두를 미치게 만드는 전쟁.

당사자도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괴롭다.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

그런 시대를 겪어낸 사람 중에 멀쩡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래서 가끔 누군가가 '전쟁 한 번 날 때 됐어.' 같은 소리를 하면 너무 무섭고 소름 끼친다.

전쟁을 그렇게도 쉽게 생각하다니, 본인들은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전쟁은 무슨 이유에서든지 용인될 수 없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가장 참혹한 결과이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런 전쟁을 몸소 겪으셨다.

우리는 가까운 과거에 이미 그런 아픔을 경험했고, 이제야 조금씩 그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현실에 취해 진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슬프게도 우리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종전 국가가 아닌 휴전국이다.

우린 서로가 서로를 좀 더 보듬어 줘야 한다.


삶은 모두에게나 조금 기쁘고 또 조금 슬프다.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

선탠Suntan│아르기리스 파파디미트로풀로스 (Argyris PAPADIMITROPOULOS)│Greece│2016│104min│DCP│color│장편│Fiction



내성적인 코스티스는 아름다운 휴양지에 어울리지 않는 우중충한 40대 의사다. 얼떨결에 관광객들의 손에 이끌려 누드비치에 다다른 그는 광란의 파티에서 19살 안나에게 반한다.


(스포일러가 아주 많음)


저 스틸샷을 보고 어찌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에 trailer를 보고 확신했다.

이건 내가 좋아할 영화구나.

그리고 결과도 그랬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11편의 영화 중 단연 최고였다.


시놉시스는 내가 보기엔 약간 잘못 나와 있는 것 같다.

코스티스는 얼떨결에 관광객들의 손에 이끌려 누드비치에 다다르지 않았고, 그의 선택으로 누드비치에 가서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파티에서 안나에게 반했다기보다 이미 병원에서 안나에게 반했고, 그래서 야영장에 그들을 찾아갔다.

안나에게 반해서 그들을 찾아갔다.

이게 맞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위의 보랏빛 스틸샷에서 볼 수 있는

처음으로 코스티스가 웃던 순간.

두꺼운 선크림을 바르는 코스티스.

부유하는 코스티스.


운 좋게 그 모든 순간이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신남.


<선탠>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미묘한 감정 변화였다.

클럽의 조명과 어우러져 그의 감정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연출과 배우, 둘 다 굉장하다.

그런 것을 포착해내고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영화 중간중간 그 아주 작고 자잘한 감정 변화를 너무 잘 보여준다.

환상적이다.


영화 내에서 보여주진 않았지만 계속 언급되는 어떤 사건으로 코스티스는 학위를 따는 데 실패하고, 이 섬의 의사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맞는 첫여름의 이야기이다.

그는 시종일관 웃지 않고, 술만 마신다.

영화의 중간에 대학 시절 친구를 만나 약간의 미소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코스티스가 이렇게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지게 된 것은 그 사건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 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코스티스는 그해 여름, 그녀를 보게 된다.


안나.


그녀는 자신과 다르게 젊고 싱그럽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 섬에 온 이후에 처음으로 야영장에 있는 누드비치에 간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노는 것과 거리가 멀던 코스티스는 안나 무리에 섞여 행복한 춤을 춘다.

그의 첫 웃음.

그리고 클럽의 조명

하지만 그의 기쁨과 행복은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들에게 의존된 기쁨이었다.

그녀가 없을 땐 같은 조명 아래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연출이 참 대단하다.

카메라도 너무 잘 쓰고.


영화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장하듯이 두껍게 바르는 선크림이었다.

의사로서 내 피부를 지키겠다는 일념인 건지 그는 두껍게도 크림을 바른다.

이 행위는 코스티스가 안나 무리와 어울리게 된 후에도 절대 변하지 않고 계속된다.

선크림에 대한 집착만큼 벗어버릴 수 없는 것.

그는 안나의 친구들에게 그들과 비슷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지만, 끝까지 벗어던질 수 없는 그만의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그의 하얗디하얀 피부에 더해진 선크림, 안나와 친구들의 구릿빛 피부

그의 퍼진 몸매와 그들의 날렵한 몸매

현지인과 타지인

그는 이미 지나 보낸 젊음과 그들의 젊음은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며 코스티스와 그들 사이에 가까워질 수 없는 틈을 보여준다.


물에 떠 있는 저 화면을 통해 부유하는 코스티스도 아주 잘 보여준다.

정말 너무 좋다.


이야기는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것과 더불어 코스티스의 감정과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까지도 우리는 명확히 알고 이해할 수 있다.

또 한 번 감독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소장해두고 계속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감정에 취해있는 것은 진짜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헷갈린다.

감정에 취하면 그 감정에 살이 붙고 상상과 합리화가 더해져 가끔은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코스티스처럼.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특권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만끽하는 것과 감정에 취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을 낳는다.

사랑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

과한 집착은 나 자신을 파괴한다.

감정이나 생각에 빠져있을 때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을 길러야 한다.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은 죽음뿐이다.

나머지의 것들은 우린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다.


코스티스는 감정에 매몰되어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

얻고자 하던 것을 영원히 잃었다.

그는 그 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마 더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 감정에 매몰되어 만들어낸 결과는 참혹했다.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은 독점할 수 없는 대상이다.

코스티스는 안나를 독점하고 소유하려 했다.

소유는 사랑이 아니다.

그는 모든 걸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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