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 바덴>, <24주>, <우아한 나체들>, <더 코뮌>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
바덴 바덴Baden Baden │라셸 랑 (Rachel LANG) │France, Belgium│
2016│96min│DCP│color│장편│Fiction
해외에서 영화일을 하려던 계획이 좌절된 안나는 고향 스트라스부르로 돌아온다. 할머니의 욕조를 바꾸고, 자두를 키우고, 포르쉐를 몰며, 그녀는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삶을 조금씩 재구성한다.
시작부터, 음악부터 내 스타일이었다.
이미 그래서 트레일러와 포스터를 보고 선택한 영화지만, 완전 퍼펙트까진 아니었지만 내가 취향을 조금씩 건드렸다.
OST와 핫핑크의 타이틀과 엔딩 크레딧이 특히 그랬다.
매력의 정점을 찍었다.
상상 속의 장면들로 안나의 상실감을 아주 잘 보여줬다.
좌절하고, 공허하지만 살아가야지.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안나는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직업, 나와 같네요.
영화와는 별개로 너무나 매너 없던 관객 둘.
맨 뒷줄이었던 내 옆자리로 옮겨 앉은 아.저.씨.
본인이 마음대로 자리를 옮겨 앉았으면서 더우니 나보고 옆자리로 좀 가라고 하셨다.
뭐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음.
옆자리가 비어있었으니까.
나도 옆이 비어있는 편이 더 좋으니까.
나의 불편도 생각해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해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졸다 중간에 나가셨다.
영화를 보는 것도 중간에 나가는 것도 개인의 취향 문제니까 존중한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시 들어와서 주무셨다.
코를 골면서.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졸았고, 그래서 나간 거라면 그냥 그대로 계속 나가 계시지.
괜히 사람들의 집중을 흐트러뜨렸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피곤함에 졸았던 거라면 그냥 끝까지 주무시거나 숙소에 가 주무셨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다른 점보다 그런 분이 ID카드를 달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운 점이었다.
다음으로 그분과 다른 편 내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는 뭐가 그리 바쁘신지 계속 전화를 받아서 '지금 영화 보는 중이니 이따 연락드린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바쁘시거나 꼭 받아야 하는 전화가 있다면 영화를 보러 들어오시지 않던지
영화를 다 본 후에 부재중 전화 기록을 보고 다시 연락을 주셔도 될 것 같은데
최소한의 매너로 핸드폰을 조용히 꺼내 좌석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소리로 전화를 받아주신 것까지는 고맙(?)지만, 그 매너를 조금만 더해서 전화를 아예 받지 않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이 분 역시 ID카드를 달고 계셨다.
그렇게 쓰실 거면 그 카드 저 주시지.
영화를 보는 일도, 다른 일도 중요하신 건 알겠지만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다 해야 할 정도로 시간이 아까운 것도 알겠지만
본인이 그렇게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는 시간이 그만큼 중요하고, 그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꼭 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일반 상영관이 아니라 영화제에서조차 이런 모습이 보여서 더 많이 안타까웠다.
시네마페스트
24주24 Weeks│안네 초라 베라체드 (Anne Zohra BERRACHED)│Germany│2016│102min│DCP│color│장편│Fiction
성공한 코미디언 아스트리드는 매니저인 남편과 둘째 아이를 가진다. 기쁨도 잠시, 부부는 아이에게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출산일과 함께 다가오는 무거운 결정의 순간은 아스트리드를 짓누른다.
저 장면이 영화의 모든 상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포스터에도 있지만, 따로 스틸샷으로도 가져왔다.
아직도 저 장면을 볼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정말 보고 싶던 작품인데 빡빡한 일정, 그리고 5일에 도착하자마자 상영관 앞에서 하는 돌림판 이벤트에서 1등으로 당첨되어 받은 현대옥 콩나물국밥 무료쿠폰으로 배 터지게 먹은 탓에 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정신 차리고 본 부분만 봐도 <24주>는 좋은 영화였다.
꼭 개봉하면 다시 볼 것이다.
배우와 연출, 시나리오까지 좋은 조화로움을 보여줬다.
시놉시스에 나와 있는 내용이 전부다.
끝까지 아스트리드와 그녀의 남편은 고민한다.
고민보다는 고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노력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희망을 보고 또 눈물 흘린다.
그리고 결정한다.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과연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우아한 나체들The Decent│루카스 발렌타 리너 (Lukas VALENTA RINNER)│Korea, Austria, Argentina│2016│100min│DCP│color│장편│Fiction
아르헨티나의 폐쇄적 부촌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벨렌이 우연히 비밀스러운 나체주의자 클럽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묵시록적인 사건을 담은 작품. 나체촌의 충격적 풍경,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의 조건이 대담한 필치로 묘사된다.
(스포일러 있음)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직접 지원한 작품이라 한 작품은 꼭 보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았고 스틸샷의 느낌으로 받은 영화의 분위기가 궁금해 선택하게 되었다.
세 번째 스틸샷에서는 내 인생의 영화인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그런 감동을 기대하며 영화를 보게 되었다.
벨렌이 두 번째로 나체주의자의 클럽을 방문했을 때, 벨렌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놀이공원에 처음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근대고, 호기심에 가득 찬 느낌.
놀이공원이 아니라 나체 공원을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처음의 발견은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웠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그 이미지를 지울 수 없어 다시 방문했을 것이다.
그 점은 벨렌이 진짜 놀이공원에 경비원과 함께 방문했을 때 더 명확히 드러난다.
진짜 놀이공원에서는 벨렌에게서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경비원과 함께 간 모텔에서 벨렌을 계속 유혹하던 경비원은 정작 벨렌이 적극적으로 다가가자 경계하고 거부한다.
둘은 물개 같은 모습으로 그냥 그곳에 남겨진다.
벨렌과 좋은 관계를 갖고 싶지만, 그녀가 자신이 기대하는 모습대로만 있길 원한다.
하지만 나체주의자 클럽에서 벨렌은 평소의 삶과 다르게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낸다.
수줍음은 수줍음 나름대로 분노는 분노 나름대로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밖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파괴하려 하자 그 밖의 세계를 파괴한다.
다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우들과 진짜 나체주의자들이 어우러져 영화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본 그때 당시에는 다른 삶도 이해는 하겠지만, 왜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만 했을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그 삶에 대한 공감이 더 멀어진다고 생각했었다.
너무 자극적인 것에만 집중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영화를 곱씹으며 리뷰하다 보니 이것은 그들의 삶을 지키려는 방법이었다.
그 형태가 매우 극단적이었던 것이고, 이것은 그들이 밖에서의 삶과 다르게 클럽 안에서의 삶은 마음을 다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역시 영화도, 책도, 사람도 그때 바로 느끼는 것과 다시 한 번 보고 느끼는 것과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보는 것에 이렇게 차이가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중에 어떤 것이 가장 그것과 가까울까.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더 코뮌The Commune│토마스 빈터베르크 (Thomas VINTERBERG)│Denmark│2015│111min│DCP│color│장편│Fiction
아버지의 대저택을 상속받게 된 에릭 부부는 결혼생활을 환기하고자 친구들을 초대해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든다. 한 지붕 아래에서 시작된 공동생활은 사랑이 넘친다. 그러니까, 과도하게 넘친다.
새로운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 삶의 모든 모습을 던져주고 우리에게 생각해보게 한다.
시놉시스를 보고 나서는 새로운 사랑의 형태인 '폴리아모리'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폴리아모리 : 두산백과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多者間)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이들은 일부일처제를 비판하며, 일부는 집단혼 형태로 가족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아내가 결혼했다>처럼.
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들은 정말 공동체의 삶을 살아간다.
같은 공간과 규칙을 공유하며 함께 한다.
이는 이 영화의 배경인 덴마크의 공동체적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그 공동체적인 삶 또한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넌지시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꾸 같기도 하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 이건 나에게도 확실하지 않은 그저 추측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급진적인 전개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급진스러움은 전개 자체가 급진적인 것인지 이 새로운 형태의 삶 자체가 나에게 급진적 인지도 모호하다.
영화의 전개가 급진적이었음에도 영화 속 공동체의 모습처럼 규칙을 가지고 유머도 함께 녹아있다.
이번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모든 영화 중에 가장 많이 웃었던 영화였던 것 같다.
(너무 오래되어 흐린 기억 속의 그대)
그 웃음은 어이없음에서도 오고,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온다.
나는 과연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저렇게 사는 것은 행복할까.
행복하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공동체 공동의 선택은 항상 옳은 것일까.
가벼운 듯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언제나 어디에서 누구에게나 이상적인 삶의 형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모두에게 통용된다'라는 것은 결국 꿈같은 이야기다.
모든 것에는 탄생과 죽음, 작용과 반작용이 있듯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언제나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