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의 생각
노인과 바다
대단히 유명한 책이다. 아무리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책 타이틀과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을 법한 그런 유명한 책이다. 나는 가끔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책의 분량이 완성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소위 ‘명작’들에 비해서 분량도 짧고, 심오한 내용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단어와 문장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이해하기 쉬운 내용을 가지고 있어 과연 얼마나 대단한 작품일까?라는 의문을 종종 가지기도 했었다.
이 책은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태도라고 평가받는 ‘도전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모든 교육기관의 추천도서목록에 항상 포함되어있다. 대다수의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기에 읽는 책이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이 책을 대학교에 와서 처음 읽었다. 내가 어려서 다들 읽는 이 책을 보지 않은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추천도서목록 같은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이 싫거나 기준을 따르다 보면 독서로 함양시키는 개인의 정신과 개성의 획일화를 가져올 수 있다와 같은 고차원적인 이유는 절대 아니었고 그냥 책 이름에 ‘노인’과 ‘바다’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아 분명 저 작품의 주인공은 할아버지일 것이고 그 양반이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는 내용일 거야’라는 추측 때문에 그런 간단한 작품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일종의 자만심을 띈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또한 나와 어부와의 접점은 그분들이 고된 노동을 통해 제공해주시는 해산물을 철 따라 바꾸어가며 열심히 먹는 정도밖에 없었고 더욱이 늙은이도 아니었기에 이 책을 읽어 봤자 경험도 연륜도 없는 내가 이 책을 읽어봤자 공감하지 못할 거야.라는 결론 때문이었다. 읽고 난 지금도 완벽히 이해는 했다고 쳐도 공감은 하지 못했고, 아버지 연배 정도 되는 나이가 돼야지 이 작품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과 바다는 알다시피 혼자 고기잡이를 나간 노인이 오랜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다 뜯기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와 함께 귀항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런 줄거리가 말해주는 건 별로 없다. 작품의 말미에서 거대한 꼬리와 하얀 등뼈만 남은 청새치를 두고 멋진 상어라고 감탄하는 관광객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자칭 ‘이상한 노인’을 따라나서 그가 무엇을 상대로 어떻게 사투를 벌였는지 직접 목격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나이들의 이야기 그 자체였다. 5페이지 정도를 읽은 뒤 받은 인상이었다.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산티아고 노인은 사십일까지는 동행하던 소년의 부모가 이른 대로 이젠 운수가 바닥이 난 것처럼 보인다. 전설적인 어부였는지 모르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이제 늙어서 힘이 빠졌다는 둥 불운이 꼈다는 둥 측은, 무시하는 시선을 보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난다. 왕년에는 대단한 장사였고, 고기 잡는 스킬도 어지간한 젊은이들보다 뛰어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출항하지만, 가끔 소심 해지는 자신과 마주한다. 또한 요즘 들어 부쩍 ‘사자 꿈’을 꾸는 횟수가 늘었다.
노인의 유일한 친구는 마놀린이다. 노인은 마놀린이 어릴 때 함께 바다에 나가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고는 한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이제 마놀린을 다른 어부와 고기를 잡게끔 시킨다. 앞서 말했듯이 노인이 고기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놀린은 매일 노인을 찾아와 그에게 식사와, 신문을 가져와주고, 주로 야구 이야기를 하며 말동무가 되어준다. 또한 노인 앞에서는 어엿한 어부, 어른이고 싶은 마놀린은 그에게 맥주를 대접한다. 노인은 소년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어부끼리 한잔하는 건데’라며 소년을 사나이 대 사나이로 대해준다.
그는 85가 행운의 숫자라고 믿으며 다시금 출항한다. 그는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먼바다에 가서 깊이 낚싯줄을 드리운다. 예상을 훌쩍 넘어선 대단한 놈이 미끼를 물고 사흘간의 쟁투가 벌어진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굉장한 물고기’와의 무모한 사투를 벌인다. 미물인 물고기에게 사랑한다. 존경한다.라고 말하지만 노인은 상대인 청새치를 죽이려고 한다. 생계는 부차적이다. “나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주고 말겠다.”라는 게 그의 결심이다. 즉, 그는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중이다. 노인과 아주 큰 물고기는 서로 닮았다. 서로의 자존심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이다.
식량은 물론, 미끼와 변변찮은 낚시도구조차 준비하지 못한 노인의 투쟁은 힘겹기만 하다. 외로운 망망대해 속에서의 싸움의 휴식 중에 그는 항상 소년과, 위대한 디마지오, 사자 꿈 생각을 한다. 소년을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의 일생일대의 사투를 혼자서만 보는 것이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노인은 소년이 자신의 위대한 싸움을 함께 목격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년에게 청새치의 크기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소년은 노인에게 있어 자신의 능력과 사내다움을 증명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인이 야구선수인 ‘디마지오’를 떠올리는 이유는 발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훌륭히 경기를 수행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에게 의지를 불어넣는다. 또한 그저 추측이지만 야구라는 스포츠는 점수를 따기 위해선 홈에서 공을 치고 나가 각 루에서 살아남고 무사히 홈까지 귀환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항에서 나가 고기를 잡고, 무사히 귀항해야 하는 고기잡이라는 작업과 비슷하다고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노인이 바다에 나가기 전 사자 꿈을 꾸는 횟수는 많아진다. 또한 대어와 싸우는 중 잠시 잠이 들었을 때 그 꿈을 꾼다. 아마 백수의 왕인 사자처럼 위세 등등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인 동시에, 대어와의 싸움을 통해 자신이 아직 현역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단계를 대변하는 장치인 듯했다.
노인은 마침내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피 냄새를 맡고 온 상어들에게 고기를 모두 내줄 수밖에 없었다. 사투 끝에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노인은 청새치의 살점 하나 없는 뼈대를 보며 미안하다고 한다. 자신의 ‘전리품’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대결을 함께한 라이벌을 허무하게 보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고 느꼈다.
노인은 결국 앙상한 뼈대만 가지고 항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소년의 간호를 받은 뒤 노인은 침대에 지친 몸을 뉘인 채 잔다. 물론 노인에게 남은 것은 뼈대와, 사투 중에 입은 상처밖에 없다. 노인은 정신승리를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각 개인에게 달렸다. 참으로 허탈하기 그지없는 결말이고, 분명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노인은 스스로의 능력을 소년과 마을 사람들에게 증명했고, 엄청나게 큰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전설로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편안하게 책을 놓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싸움이 결코 패배가 아니라고 느꼈다. 결정적으로 결말부에 잠들었을 때 그는 사자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뒤 인간 존엄성, 선택에 대한 책임과 끝없는 투쟁심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전에 읽어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책의 중심 구절은 “세상은 꽤 괜찮은 곳이며 살아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라는 문장인데 이것이 절로 떠올랐다. 전공 교수님께서 헤밍웨이의 작품은 그가 기자 출신이기 때문에 간략하고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를 하는 이른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문체라고 지나가면서 말씀해 주신 적이 있는데 여러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정말 신문기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노인이 다시 바다로 나가겠다. 즉 다시 한번 투쟁할 것을 암시하며 결말을 맺는데 그에 반해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가와바타 야스나리처럼 거대한 상을 받은 뒤 더 뛰어난 작품을 집필하지 못한다는 중압감과, 사고로 인한 부상 따위의 요인으로 슬럼프를 겪다가 엽총으로 자살을 한다.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같은 문장을 쓴 작가가 슬럼프에 패배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할 따름이었다.
이 책은 망망대해에서 늙은 어부가 고기를 낚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요즘 판타지 소설이나 추리소설 같은 조미료가 듬뿍 처진 맛 같은 재미는 없었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나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묘한 매력이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담백한 문체가 참 반가웠다. 또한 노인 ‘산티아고’는 참으로 멋진 인간이었다. 소년이 노인을 보듯이 나도 그를 존경하는 눈으로 늙은 어부를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