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 훌쩍 떠나자

아름다운 동행 사춘기

by lisiantak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집 안에 있기가 너무나 덥고 답답한 어느 여름이었다. 나는 딸의 버킷리스트를 떠올렸다.

'이 날씨에 무엇을 하면 좋아할까?'

언젠가 스노클링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 것이 기억났다.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스노클링 하는 곳을 찾았다. 한참을 찾다가 남해안 쪽에 있는 체험 장소를 찾았다. 거리를 보니 차량으로 3-4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졸음이 많은 나로서는 혼자서 운전해 가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그렇지만 마음먹은 김에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딸에게 물었다.

"내일 아빠랑 스노클링 하러 갈래?"

환한 웃음으로 "네"하고 답하는 딸의 모습이 너무나 신나 보였다. 딸과 생각의 코드 맞추기 성공이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 여행 복장과 준비물들을 챙겼다. 아내는 내가 운전하다 졸 것에 걱정이 되는지 딸에게 단단히 임무를 주었다.

"너는 아빠가 졸지 않게 옆에서 감독 잘해야 해. 자지 말고, 알았지?"

졸음운전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먹을 것도 준비했다. 먹는 재미가 여행의 진미이자 졸음운전 방지약이다. 딸은 내일의 즐거운 여행을 기대하며 행복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급히 서둘러서 출발했다.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출발했지만 옆에서 감독하는 딸 때문에 한 동안 졸 시간도 없이 잘 갔다. 한참을 운전하다가 옆을 보니 지긋이 눈을 감고 자고 있는 딸의 모습. 기분이 좋았다. 뿌듯했다. 딸이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해주러 떠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두 아들이 사춘기를 지낼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 있다는 이유로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함 마음이 교차했다. 이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자고 있던 큰 아들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출발했다. 아니 딸만 생각하다 보니 큰 아들이 있다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함께 갈 것인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그것도 자기만 놔두고 동생 하고만 바닷가로 떠난 사실을 알면 얼마나 서운해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졸음이 찾아올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들들의 사춘기 때 잘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던 그 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사고를 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폭풍우처럼 밀려왔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생각을 일단 빨리 떨쳐버려야 했다. 옆에 있는 딸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고, 모르겠다. 뒷수습은 집에 가서 하자."

일단은 현재를 즐기고 집에 가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편이 최선이었다. 딸이 깨어났을 때는 복잡한 나의 생각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다.

"일어났어? 거의 다 왔네"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흥분해 있는 딸의 모습에 집에 있는 아들의 생각은 점점 사라졌다. 3시간가량의 운전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다다!

바다에 들어갈 복장으로 갈아입고서 티켓을 끊고 안내에 따라 장비를 지급받았다. 스노클링을 위해서는 멀리 보이는 작은 섬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동 코스에 대해 설명을 듣고 2인용 카약을 타고 노를 저어서 자그마한 섬으로 이동했다. 다른 팀에 질세라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부쳐가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딸과 노 젓는 모습은 마치 2인 카약 선수 같았다. 호흡이 척척 맞았다.

"오! 노 잘 젓는데? 카약 선수해도 되겠어. 하하"

뒤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따라 잡히지 않겠다는 경쟁심이 발동했다. 더 열심히 노를 저었다. 딸도 신나게 저었다. 결국 우리는 1등으로 섬에 도착했다. 그 섬에 도착하니 물이 정말 깨끗했다. 마치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파란빛의 바다와 밑바닥이 선명하고 신비하게 보이는 깨끗한 바다였다.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속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수중에서 스노클링 하는 모습을 인증샷 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몸이 물속으로 잠기지 않았다. 구명조끼 때문이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답답해서 안전요원에게 물으니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벗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구명조끼 없이 하고 싶었으나 딸은 두려움이 있었는지 벗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자세를 조금 달리하여 맑은 바닷속에서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른 팀들도 바다 위에 둥둥 떠서 물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노클링 체험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였지만 나름대로 좋았다.


즐거운 스노클링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녁식사를 했다.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마음을 다졌다. '나 홀로 집에' 남겨진 신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올 것이 왔다. 아들의 표정과 마음이 걱정이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잘 다녀오셨어요?"

우리의 마음은 빙하가 녹아 흐르듯 했다.

"자고 있어서 생각도 못하고 동생만 데리고 다녀왔네. 미안"

이렇게 또 한 번의 딸과의 동행이 끝났다.

앞뒤 가리지말고 훌쩍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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