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지도사가 된 이유

사춘기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by lisiantak


'쾅 소리를 내며 닫힌 문에 등을 기댄다. 문을 걸어 잠근 사람은 나다. 그런데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누군가 나를 방에 가둔 것처럼 답답하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사춘기를 앓고 있는 내 딸 현정이의 “나 좀 안아 줘. 빨리 나 좀 안아 줘”와 “나가!” 사이에서 엄마인 나는 혼란스럽다. 울먹이며 엄마를 필요로 하는 현정이와 엄마를 밀어내는 현정이 사이에서 나는 아프다.'


이명랑 저자의 '사춘기라서 그래?'의 소설에 나오는 딸 현정이와 엄마의 마음이 담긴 글이다. 딸도 엄마도 자기 안의 또 다른 자기와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사춘기가 뭐길래 집 밖에서의 삶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집 안에서 더 힘들어야 하는가? 우리 집은 아이들의 방 문이 항상 열려 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공부를 하거나 옷을 갈아입는 등 필요할 때만 문을 닫는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데 문을 닫고 있으면 방 안이 궁금해진다. '뭐 하려고 문을 닫았지?' 방 안도 궁금하고 그 마음도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여기에 더하여 화장실에 들어가면 너무 오래 있다가 나온다. 물소리도 너무 오래 난다. 목욕탕도 없어서 물 받는 것도 아니고, 샤워를 해도 몇 번은 할 시간이다. 화장실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정하고 무언가를 한다. 화장실에서 나는 물소리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의 변화는 사춘기 증상 중 하나인 것 같다. 베일에 싸인 공간과 시간은 아이들과 부모 사이의 마음의 간극이다. 그 마음의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이 사춘기의 갈등을 극복해 가는 과정 이리라.


두 남자아이들의 사춘기를 동시에 겪으면서 부족한 아빠의 모습을 느꼈다. 부모에게, 어른에게 반항하는 모습은 상상을 해보지 못했다. 당연히 부모가 얘기를 하면, 조금 혼내면 "죄송합니다"하고 반성할 줄 알았다. 제자리로 돌아와 사랑스러운 자식의 모습으로 있어줄 줄 알았다. 이치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알아들을 줄 알았다. IQ가 높으니 그럴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것과는 별게였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였다. 타인의 입장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다가 대화의 진척 없이 짜증이 나서 나오곤 했다. "대화가 안돼. 무슨 자기 생각만 하지?" 아이들과 나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행위 자체는 미워하되 아이들은 미워하지 말아야 되는데 그게 안된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위의 반복은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가 거친 말이 되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그대로 돌아간다. 결국 아이들도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확실해" 이렇게 아이들의 마음의 방벽은 높아만 간다. 어느 의사와의 상담한 결과가 생각났다.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지 못하고 나타난 행동만 고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나는 이 의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아이의 감정보다 보이는 행동에 주목했던 나 자신을 반성해 보았다. 그 후로 감정을 읽어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당장 부모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문제시되고 고쳐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 행동만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모의 생각에 아이들은 또 얘기한다. "제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기나 해요?" 이 말에 생각 없는 답이 나오고 만다. "왜 몰라?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그 이유 말고 뭐가 있어?" 아이들에게는 원자폭탄 같은 말이다. 이런 평행선의 대화 끝에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 있다. "힘들다고요. 힘들어서 그런데 그 마음을 알아주면 안 되는 거예요?"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남들 못지않게 사달라는 것 사주고, 먹고 싶다는 것 먹여주고 하는데 뭐가 힘들다고 하는 것인지 몰랐다. 너무나 어린 부모였다. 킬링(killing) 부모였다. 부모가 처음이라서, 사춘기 아이들이 처음이라서 서툴렀다. 아니 서툴다 못해서 아이들을 상처투성이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했다. 아이들을 덜 아프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가 아프면서 배워간다는 말은 나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두 아들들의 사춘기가 끝날 때쯤이면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배워야 건강한 마음으로 딸의 사춘기에 동행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 빨리, 더 많이 배우고 싶었다.


사춘기 자료를 찾다가 전문 자격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각 종 자격증 현황을 찾아보았다. 결국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후 관련 과목 학점 이수를 위해 수강을 해야 했다. 수강 중에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은 말이 있었다. 어느 상담전문가는 "내 아들의 사춘기에 대해 상담이 필요할 때는 같이 일하는 다른 상담가에게 부탁해요. 아빠가 상담전문가이지만 아들의 상담은 제대로 못하겠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왜 다른 사람의 상담을 해주고 문제를 풀어주는 전문가가 자기 아들의 상담은 어려운 걸까? 그렇다면 내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공부는 계속해 나갔다. 공부를 해 나가면서 조금씩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들을 걱정해서 사춘기를 공부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아이들의 사춘기와 마주 서게 될 부모로서의 위치와 자세를 깨닫고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다른 부모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사춘기를 무난히 보내는 가정들의 아이들과 부모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 가정의 부모는 북극성처럼 제자리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북극성을 바라보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더욱 나는 마음을 먹었다. 청소년지도사가 꼭 되겠노라고. 그래서 사춘기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1년의 노력 끝에 학점 이수와 면접 통과에 성공했다. 남은 것은 연수였다.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연수 신청을 했다가 번번이 일이 겹쳐서 연수를 받지 못했다. 마침내 4년 후에야 천안 청소년수련관에서 연수를 마치고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받았다. 개인적인 성취감도 있었고 함께 연수를 받았던 분들과의 다양한 사례를 들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딸의 사춘기는 청소년지도사인 아빠가 동행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지인을 돕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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