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없는 생활
쓸개 없는 사람을 만들겠다는 의사의 말
정기 건강검진을 위해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갔다. 병원 측 지시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검진을 시작했다. 1시간가량 검진을 마치고 종합 설명을 듣게 되었다. 의사는 화면을 보더니 담석이 의심된다고 하면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C병원에 예약을 하고 해당 날짜에 병원에 갔다. CT촬영 결과를 보더니 다른 방법은 안되고 수술을 해야 한단다. 결국 몸에 칼을 대야 했다. 담낭절개 수술이었다. 쉽게 말하면 쓸개 없는 사람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쓸개 없는 놈’이 되는 건가? 이 생각을 하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왜? 예전에 정책부서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나서였다. 그곳에서 근무할 때 선배들이 하던 말들이 있었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말들이다. 그곳에서 근무하려면 간과 쓸개는 빼놓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근 산에 얼마나 많은 간과 쓸개가 묻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간과 쓸개를 달고 다니고서는 근무하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모양이다. 한번 근무하러 들어온 이상 살아나가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물론 이 말은 정말 힘들다는 표현이지 시체가 되어 나간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 업무강도와 스트레스 등이 얼마나 큰지를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내가 살아 나갈 수 있을까? 괜히 들어왔나?’ 할 정도였다. 그래도 간과 쓸개를 빼놓고 다녀야 된다는 말이 처음에는 감이 오지 않았다. 실제로 빼놓고 다닐 수도 없었으니. 웃음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자기 줏대 세우고, 제정신으로는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쓸개는 ‘대담’과 ‘줏대’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러니 업무를 하면서 자기 성향대로 대담성과 줏대를 부리다 보면 상급자와 동료들과의 갈등이 빚어질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되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 그곳이 그런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소문이 났었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았는지 간과 쓸개를 빼놓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되는 순간에는 내 고집을 내려놓고 결정권자에게 선택을 맡겼다. 그러니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간과 쓸개 다 빼놓고 처신했다면 아마 결과가 끔찍했을지 모른다. 2년이라는 근무기간을 간과 쓸개 안 빼놓고 살다가, 죽지 않고 살아서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쓸개를 버려야 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그때 빼놓고 살지 않아서 그 영향으로 쓸개 기능을 못하게 되었나 싶어 졌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저절로 난다. 물론 진실은 내가 관리를 못해서 그런 것이지만. 어쨌든 말이 씨가 되어 버렸다. 나도 쓸개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쓸개 없는 놈
간담초월(肝膽楚越)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다는 뜻이다. 초와 월나라는 가까이 있었지만 사이는 좋지 않아 서로 원수처럼 여기는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으면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는 지조 없는 사람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고 말한다. 자기 편리한 대로 행동한다는 뜻일 것이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간과 쓸개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가도 입장이 바뀌면 한없이 멀어지고, 적대관계나 아무 관계없이 살다가도 상황에 따라 가까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남을 믿어서도 안되고 속마음을 다 터 놓아도 안 되는 이치를 깨달으며 살아간다. 이제 나는 쓸개 없는 사람이니 간에만 붙어 있어야 하는 운명인가? 쓸개 없는 삶을 살아야 하니 건강을 위해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것들은 비록 하찮은 기능을 할 지라도 무언가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기능을 못하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몸에는 무언가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자신이 느끼지 못할 정도라 할지라도. 그래서 음식을 먹는 것도 조금은 더 조심해서 먹게 된다. 이처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리라. 상황 따라 사람을 가까이하고 때론 멀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현재의 모습에 만족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이 너무 편하다. 쓸개 없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