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한 격언이다. 말은 정말 힘이 있다. 그래서 말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힘에 의해 누군가는 억눌리고 아파한다. 차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당연히 따뜻한 말을 해야 한다. 따뜻한 말에는 살리는 힘이 있고, 차가운 말은 사람의 마음을 냉동시켜 버린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당연히 힘나고 사랑스러운 말을 듣고 싶다.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그런 말. 그 말에 힘입어 하루의 힘든 일들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말을 듣고 싶다. 누구나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런데 오늘 아침도 조직을 위한 답시고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듣는 이들은 냉기 서린 말에 얼고 내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알면서 저지른 일을 후회하며 반성문을 써 내려간다.
말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 떠 올랐다. 어느 날 박 과장이 등장한다. 영업 3팀에 나타난 박 과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참으로 아팠다. “오 과장님, 안녕하세요. 이제 한 팀이네요. 아 네가 낙하산 걔였지? 쟤는 어떻게 붙은 거예요? 끗발도 별로라면서” 이런 가시 돋친 감정을 담은 박 과장의 말은 장그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함께 일하기 위해 온 상사가 맞는지 궁금할 정도다. 내가 실무자로 일할 때 듣기 싫었던 말들이 있었다. “그것밖에 못해” “멍청이” “이걸 보고서라고 가져왔어” “손발이 맞아야 해 먹지” “00이 해도 이것보다 낫겠다” “이 따위로 할 거야” 미생의 박 과장 정도는 아니어도 그런 어투로 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가며 버텼던 때가 생각난다. 나는 호아킴 데 포사다의 <바보 빅터>를 감동으로 읽었다. 이 책은 기회가 될 때 자주 읽으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책의 등장인물들이 빅터에게 한 말들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넌 도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돼먹은 거냐? 천 달러가 넘는 컴퓨터를 뜯어내겠다고? 돌고래도 너보다는 똑똑할 게다. 멍청한 놈. 바보에게 공부는 필요 없어! 나가서 장사나 배워!”(로럴드 선생이 빅터에게)
“너 정말 구제불능이구나”(로라가 빅터에게)
“하하하! 오늘 메를린 학교의 IQ 최저점이 깨지겠군. 돌고래, 걱정 마. 동물보호협회에서 널 보호해줄 테니”(더프가 빅터에게)
저자의 표현대로 이런 말들은 ‘보이지 않는 총알’이 되어 빅터의 마음에 꽂히고 말았다. 온 마음이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빅터에게는 아픔을 이기고 살아날 수 있게 따뜻한 사랑이 담긴 말을 해 주었던 레이첼 선생이 있었다.
“빅터야, 항상 무언가를 관찰하고 배워야 더 나은 사람이 된단다. 어른이 되어 배우는 공부가 진짜 공부야. 포기해선 안돼.”(레이첼 선생이 빅터에게)
레이첼 선생의 온기 가득한 말에 빅터는 반응을 보였다. “고마워요....바보에게 잘해...주셔서.”
똑같은 상황에 대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의 감정은 달라진다. 말에 의해 사람과의 관계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 한마디 잘못해서 때로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기도 한다. 물론 말하는 사람은 별 감정 없이 한 말일 수 있다. 뒤끝은 없을 수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하기도 한다. 감정의 잔재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감정의 잔재가 쌓여있다. 악의가 없고 뒤끝이 없다며 상대의 마음은 가시에 찔려서 아프다는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이것이 문제다. 그래서 말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느린 말은 따뜻한 감정을 동반한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자기의 의사를 상대가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강하고 자극적인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말의 속도가 빠르다. 빠른 말이 상대를 더 빨리 그리고 제대로 반응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말(馬)은 빨리 달리면 좋은 말이라고 평가받지만, 빠른 말(言)은 상대의 마음 문을 닫히게 만들고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KTX를 타고 가면 빨리 갈 수는 있지만 중간중간 눈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가게 된다. 그래서 목적에 따라 때로는 무궁화호를 타고 천천히 가면서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풍경을 내 마음속에 품고 싶다면 완행열차를 타는 것이 낫다. 고속열차가 등장했어도 느린 열차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KTX 말고 무궁화호를 타듯 우리에게 때로는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위해서 느린 말이 필요하다. 말의 느림은 힘이 없는 것 같지만,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것 같지 않지만 따뜻함으로 서서히 움직이게 만든다. 왜?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그러하다.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마음을 움직이는 비결이다. 빨리빨리의 세상에서 살다 보니 말도 빨라져 있다. 감정의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빠른 말을 하는 습관이 상대를 멀어지게 한다. 그래서 감정을 터치하는 말을 다스리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오늘, 나는 입을 통해 내뱉는 말의 속도를 늦추며 살아가련다. 말의 느림이 행동의 느림은 아니니까. 말의 느림은 따뜻한 감정을 동반하고 그 따뜻함은 상대의 마음을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이런 스스로의 움직임은 빠른 움직임이다. 말의 느림에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