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동네에서 학교까지 큰길(신작로)이 잘 닦여 있었고, 그 주변에는 논들이 꾸불꾸불 논두렁을 자랑하고 있었다. 논두렁에서 소 먹이 꼴을 베기도 하고, 벌레들을 죽이기 위해 불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논두렁 길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토요일로 기억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깃발을 앞세우고 대장 인솔 하에 함께 집으로 갔다. 학교에서 동네까지 편한 큰길이 있는데 대장은 논두렁 길을 이용했다. 대장 마음 내키는 대로 이끌고 다녔다. 좁은 논두렁 길이라서 때로는 발을 헛디뎌 논에 빠지곤 했다. 대장은 나보다 등치도 작은 친구였다. 우리는 논두렁길을 유난히 좋아했던 대장의 독재에 별 저항 없이 따라다녔다. 이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이날도 변함없이 논두렁 길을 따라 동네로 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무 말 못 하고 가자는 대로 가고 있었다. 친구들의 마음속은 잘 읽을 수 없었지만 다들 즐겁게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웬일인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큰길을 놔두고 왜 논두렁 길로 다니는 거야?’ 더 이상 이렇게 다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큰길에서 논두렁으로 들어가 얼마를 갔을까? 대장보다 등치가 큰 나는 대장의 몸을 잡았다. 그리고 씨름판에서 상대 선수를 들어 올려 모래판에 내동댕이 치듯 대장을 들어 올려 논에 던져 버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 큰길 놔두고 이런 논두렁 길로 자꾸 데리고 다니냔 말이야?” 그동안의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뚜껑이 열리고 만 것이다. 나도 나의 행동에 놀랐다. 다른 친구들의 모습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마 속으로 박수를 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 후로는, 우리는 잘 만들어진 큰길을 따라 편하게 그리고 빨리 집까지 갈 수 있었다. 가끔 고향을 내려갈 때면 그곳을 지나게 되는데 자연스레 눈이 돌아가고 그때 생각에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순진한 팔로워의 반란이었다.
리더가 바뀌지 않는다면
리더의 길에서 팔로워들의 크고 작은 반란을 보게 된다.
리더에게 있어서 길은 ‘원칙과 상식’이다. 원칙 없이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리드해 나가면 언젠가는 팔로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되어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장비’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관우가 죽고 유비가 오나라 정벌을 결정했을 때였다. 장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공격 준비를 했다. 이때 관우를 애도하기 위해 모든 군사들에게 입힐 흰 갑옷, 흰 군복 그리고 흰 깃발을 사흘 내에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조달 담당자들은 사흘 안에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을 나무에 매달아 채찍질하고, 얼굴에 피가 가득할 정도로 직접 때렸다. 그러면서 다음 날까지 마련 못하면 목을 베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생명에 위협을 느낀 조달 담당 두 장수는 장비를 죽이고 오나라로 달아났다. 리더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 팔로워들의 자세이지만 그 명령이 합리적이지 않을 때가 문제인 것이다. 장비의 입장에서 도원결의를 했던 형제 ‘관우’의 죽음이 왜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날 한 시에 죽자고 그렇게 맹세해 놓고 먼저 갔으니, 그리고 지켜주지 못했으니 그 심정은 이해가 갈 것 같다. 그렇지만 전쟁준비에 바쁘고 현실적으로 명령의 내용을 기한 내에 완수할 수 없음을 부하 장수가 이야기하는데 그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던 장비. 리더로서 장비는 마음의 귀를 열지 못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한계선이 있기 마련이다. 그 마음의 한계선까지 버티다가 결국 부러지거나 폭발하고 만다. 부러지는 사람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폭발하는 사람은 리더에게 대항한다. 얼마 전에 인접 조직에서 일어난 일이다. 리더의 지속적인 폭언으로 팔로워들은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그들의 마음의 한계선이 넘는 순간, 폭발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리더의 상황을 상위 조직에 알리고 조치를 건의했다. 결국 사실조사를 거쳐 리더는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 리더는 얼마 전에 부친상을 겪으며 개인적 슬픔을 겪고 있었던 차였다. 엎친데 덮친 격인가? 개인의 불운이 더해졌으니 얼마나 아픔이 컸을까? 그러나 누구를 탓하겠는가?
어느 일간지에 ‘MZ세대 반란’이란 기사가 나온 것을 보게 되었다. 기사에 의하면, 노조 갑질 못 참겠다는 MZ세대들은 ‘회사의 처우뿐 아니라 경영진 실책, 조직 문화까지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 기사에서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이념이 아니라 실리와 공정을 추구하는 MZ세대의 반란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고 계속 번질 것”이라고 했다. 실리와 공정에 대한 문제는 이 시대 리더들이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얼마 전에 함께 근무하는 구성원들이 마음의 소리를 전해 왔다. 근무에 대한 공정성과 성과에 대한 대우 부분이었다. 지난번 근무가 불공정하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후속조치를 했는데 아직도 공정성 이야기가 나왔다. 제대로 조치가 안되었거나 또 다른 불공정 문제가 생긴 것이다. 평일과 휴일, 전반야와 후반야, 근무 분야별 인원수 등 여러 가지에서 공정성을 따지고 있다. 입을 다물고 감내하는 과거와는 다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세대들이다. 심지어 근무 공정성을 보장받기 위해 근무편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공정성도 보장되고 근무편성을 하는 간부의 시간도 단축시켜 주었다. 이렇듯 요즘 세대들은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효율성을 더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참여를 하기도 한다. 이들의 성향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MZ세대들의 유쾌한 반란은 계속될 것이다. 리더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오늘도 사무실 맞은편 벽면에 세워 둔 책을 바라본다. 정영학 저자의 ‘리더 반성문’이다. 내 마음대로, 원칙 없이 인기를 위해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돌이켜 본다. 정말 다행히도, 30여 년의 외길 인생 속에서 팔로워들의 반란은 없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판단의 잣대를 원칙과 상식에 두고 공감과 배려를 하려고 했던 노력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큰길이 있음에도 누구나 쉽고 편하게, 그리고 빨리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데 구불구불 논두렁 길을 따라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다녔던 어릴 적 대장을 다시 소환했다. 이런 리더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깨닫게 해 준 그 대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되는 건가? “고맙다.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