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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iantak Dec 04. 2021

하늬바람이 건네준 말

슬퍼하지 마

슬퍼하지 마라. 이 못생긴 돌멩이들아

주먹만 한 돌이 150억이라니. 어떤 사람이 중국 고비사막에서 주운 할머니 형상의 자연석을 주었다. 그 돌을 경매를 통해 150억에 팔았다는 블로그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얼굴의 주름살이 한층 할머니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뚜렷한 형상을 가지고 있으면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 수석 전시회에 가 보면 정말 다양한 돌들을 볼 수 있다. 형상석, 무늬석 등 자연이 만들어 낸 신비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나도 저런 수석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바닷가를 가도, 강가에 가도 욕심을 가지고 찾아보지만 가치가 있을만한 수석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수석 전문가들 사이에는 남한강 수석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남한강에서 수석을 찾기는 어렵다는 말이 들린다. 남아있는 돌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일반 돌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선택받지 못한 돌들이 나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찬 바람에 날려온 낙엽 한 장이 텅 빈 내 가슴에 내려앉는다.     

개울가에 있는 수많은 돌멩이들 중에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고운 돌멩이들은 사람들이 가져가고 미운 돌멩이들만 남아 있다. 이 미운 돌멩이들이 자신도 사람들의 눈에 띄어 개울가를 떠나고 싶어 할 때, 하늬바람이 다가와 이렇게 말해 주었다.
“슬퍼하지 마라. 이 못생긴 돌멩이들아. 사람들이 가지고 간 돌멩이는 겨우 한 칸 방을 꾸미고 있지만 너희는 이 지구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 않느냐? 하하하...(중략)... 여기서는 몰라, 높은데 올라가면 다 볼 수 있지. 높은데서는 알 수 있어. 너희들 못난 돌멩이들이 굽이치는 개울을 따라, 큰 강을 따라, 바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아름다운 비단 폭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지를...” - ‘미운 돌멩이’ 중에서(권정생 등저)     

하늬바람이 건네 준 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대로 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근무하고 싶은 곳이 있는데 경쟁에 밀려서 선택받지 못해 가지 못한다. 결국,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낯선 곳에서 근무를 해야 할 때도 많다. 거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고 떨어져서 지내야 하기까지 한다. 함께 있어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 역할이 서툰데 떨어져 있으니 나의 주가는 하락할 수밖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주가가 계속 하락하도록 방치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서툴다 못해 나쁜 사람이겠지. 혹시 모른다. 이것은 내 중심의 생각이고 가족들이 볼 때는 다를 수도 있다.

어쨌든 선택받지 못한 상황 속으로 던져지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듯하다. 그럴 때 어떻게 내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 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새로운 보직을 받아야 할 때 빈자리를 참고해서 희망 직위를 신청했고, 실무자 판단도 내 희망과 거의 일치해서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심의 결과를 기다렸다. 어느 날, 전화벨이 기다림의 정막함을 깨뜨렸다. “죄송합니다.” 이 한 마디를 듣고 나는 알아버렸다. 내 기대가 산산조각이 난 것을. 천천히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고, 알지도 못한 직위에 가서 근무를 해야 했다. 개울가에서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못난 돌멩이 신세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것은 순간 들었던 감정이다. 못난 돌멩이에게 하늬바람이 찾아왔듯 내 마음에도 하늬바람이 불어와 속삭였다. “슬퍼하지 마. 지금은 몰라. 그곳에 가면 알 수 있을 거야. 결코 실망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 하늬바람은 내가 독서치료 교육과정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른도 마음이 아프면 어린이의 마음이 되는 것일까? 비록 어린이 동화책에서 만난 하늬바람이지만, 내 마음을 품어주기에 충분했다. 어린 시절 누나의 손에 있던 풍선이 갖고 싶은데 뺏을 수 없어 울고만 있던 사진 속 장면이 떠오른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

얼마 후, 나는 새로운 자리로 옮겼다.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업무,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내 편이 되었고, 익숙해져 갔다. 하늬바람의 말처럼 실망할 곳이 아니었다. 특히,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혼자 사는 좁은 공간이지만, 정성을 담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부담 없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낙심해서 있을 때, 언젠가 만났던 글들이 나를 달래주었다. 글의 힘을 느꼈다. 온기의 힘으로 차가운 내 마음을 녹여 주었던 것이다. “슬퍼하지 마.” 내 영혼이 따뜻해졌던 그 소리에 나는 지금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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