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도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두 시간을 걸었다. 등에 맨 가방에는 노트북과 우산, 물병, 안경, 스마트폰 충전기, 보온옷을 챙겼다. 조금 걷다보니 날씨가 변하고 흐림에서 이슬비로 바뀌었다. 자유롭던 내 두 손도 우산에 구속을 받아 자유롭게 흔들지를 못했다. 아스팔트길을 벗어나니 숲속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의 산길을 따라 걸었다. 이름모를 풀들과 각종의 나무들이 나를 쳐다볼 뿐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인적없는 길을 따라 시간을 밟으며 걸었다. 알 수 있는 나무와 풀들이 나타나면 그 이름을 불러본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행복하겠지? 내 이름은 그 누가 불러줄까? 외롭게 걸어가는 이 내 마음을 누가 알아보려나. 시간을 밟고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무거운 내 마음을 발자국에 남기고 가고 싶다.
"심정 안맞아 못살겠어."
심정을 맞춰 산다는 것, 너무나 어렵다. 바위와 나무가 어우려져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둔산이 구름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는 날처럼 내 마음도 잘 모르겠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내 마음도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아니, 내 마음보다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마음을 맞추며 살 수 있을텐데. 내 눈으로 상대의 마음을 바라볼 수 없으니 답답할 뿐. 태양이 구름을 벗기든지,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든지 창밖 저 산이 선명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마음도 먹구름이 벗어지겠지. 누구를 탓하랴. 내가 그 정도밖에 안되니.
평생 '을'로 살아가는 마음. 침울한 마음을 이끌고 걷다보니 배가 고팠다. 휴게소에 들러 컵라면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이슬비 내리는 날, 야외 테이블에 홀로 앉아 컵라면을 먹는 내 신세 참 외롭다.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마음은 한 길을 타면 다른 길로 들어서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내 마음을 내가 조종하기가 이리 어려운 것을. 홀로 앉아 있던 카페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대화 소리로 가득찼다.사업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창밖의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소리와 함께 웃음 소리가 넘친다. 내 마음에도 다양한 소리들이 가득한데 어느 한 마음에 짓눌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슬비 내리는 날, 내 마음에도 이슬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