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살다 죽는 것만큼 슬픈 게 있을까?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 앞에서 쓰러졌다. 퇴근하던 그녀는 너무나 놀랐다. ‘어찌해야 할까?’ 고양이를 데리고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누구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미정이 보호자님 계세요?”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뒤늦게 알았다. 그녀가 데려온 고양이 보호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왜 미정이지?’
이 고양이는 1년 전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고양이와의 텃새 싸움에서 다치고 급기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시간이 1년이 지났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나 쓰러졌다. 죽음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고 마지막을 부탁할만한 사람을 찾아온 것이다. ‘나를 잊지 않고 찾아오다니.’ 고맙고 안쓰러웠다.
1년 전에 만났을 때 이름을 불러주었더라면, 미정이로 불리지 않았을 것을! ‘미정‘이라고 불리는 고양이들은 이름이 없어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 이름 없이 살다가 죽는 현실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새삼 깨달았다. 이름이 있는데 이름이 없는 듯 살아가는 존재들. 이제 이름을 불러 주리라! 미정이가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름을 불러 주세요! 나처럼 이름 없이 살지 않도록.”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