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리액션이야

딸에게서 인생 한 수를 배운 아빠

by lisiantak
인생은 리액션이야!


10월 중순, 6년 만에 골프를 쳤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과거에 배웠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중요하지? 스윙 연습을 한다고 해서 바로 실력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스윙보다 매너다. 매너에 집중해서 준비했다. 골프에는 매너가 몇 가지 있다. 그중에서 동반자가 샷을 하고 나면 호응을 해 준다. "굿샷!", "낫 배드!" 퍼팅을 하고 나면 "나이스 펏!", "아!!!" 하고 외쳐 준다. 이런저런 매너를 생각하고 푸른 잔디를 밟으며 갔다. 멋진 폼으로 티샷을 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았다. "굿샷!" 티샷을 마치고 뒤에 서서 다른 동반자의 티샷을 지켜보았다. "낫 배드!"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나는 못했다. 동반자의 티샷이 슬라이스가 나서 원하는 방향으로 치지 못한 모습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망설이는 순간, 모두는 "낫 배드"를 외친 것이었다. 나는 너무 생각이 깊다. 그래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OB는 아니니 "굿 샷!"이라고 해야 하나 "낫 배드!"라고 해야 하나? 생각의 갈림길에서 기회를 놓친 것이다. 리액션의 실패다. 내 티샷에 기분 좋은 리액션을 받고는 정작 다른 사람의 티샷에 적당한 리액션을 해주지 못하다니. 리액션도 습관이었다.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평소에 스윙 연습만 할게 아니었다. 매너 연습이 필요했다. 골프에서 타수보다 매너가 더 중요할 때가 많을 텐데. 평소에 무반응의 삶에 익숙하다 보니 반응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색하다. 물론 완전한 무반응이 아니라 마음과 표정으로 하는 조용한 리액션은 한다. 그러나 상대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리액션이 아니었다. 상대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리액션이라면 보다 효과적일 텐데.


인생 50을 넘기도록 제일 어려운 것이 '리액션'이다. 잘 고쳐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였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단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큰 소리로 한 마디 씩 했다. "엄마, 진짜 맛있어!" "지금까지 먹어 본 맛 중에 최고예요"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조용히 내뱉는다. "음, 맛있네" 아내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소리로. 아내는 이내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때요? 맛있어요?" 지금껏 아내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음, 맛있어요(저음으로)" 영혼 없는 소리였는지 딸이 한 마디 했다. "아빠! 그게 뭐예요. 따라 해 봐요. (고음으로) 음, 맛있어요. 최고!" "(낮은 목소리로 평소처럼) 음, 맛있어요. 최고" "아빠, 그게 아니고 2옥타브 올려서 음, 맛있어요" 그대로 따라 시늉했다. "바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잘했어요. 아빠. 인생은 리액션이에요" 인생은 리액션이라고! 어떻게 어린 딸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인생의 한 수를 딸에게서 배웠다. 아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 내 성격을 20년 넘게 보아 왔으니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나의 이런 모습이 정말 싫다. 그런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싫을 때가 많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리액션이 크지 않았다. 작고 조용했다. 음식은 맛있게 먹어주는 주는 것이 내가 표현하는 리액션이었다. 추가해서 먹는 경우는 최고로 맛있다는 리액션이었다.

"소리가 차를 말한다. 쉿, 000" 도로를 달리는데 개구리 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차 뒷좌석에서 자고 있던 개는 차 밖의 벌 소리에 깬다. (승용차 광고 장면)


어떤 회사의 승용차 광고였다. 소리 없이 강한 차로 소개하였다. 이 광고에서처럼 나의 리액션도 소리 없이 강하길 원했다. 그러나 내 만족의 소리 없는 리액션일 뿐이었다. 정작 힘을 받을 대상은 나의 리액션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에 흥을 주지 못한 리액션은 리액션이 아니었다. 무반응과 마찬가지일뿐이다.


인생을 돌이켜 봐도 '인생은 리액션'이라는 말이 정말 맞다. 성격상 잘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연습을 했다면 어느 정도는 상대의 기분을 UP 시킬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관계성도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살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껏 너무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길 바라고 있었던 같다. "저 사람은 원래 무표정이야. 저 정도 표현하는 것이 최고의 표현이야" 이렇게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추임새를 잘해야


한 번은 가족끼리 여행 중에 판소리를 구경하였다. 판소리가 시작되기 전에 연출자가 나와서 청중을 향해 추임새 교육을 하였다. 창자와 고수와 청중이 교감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판소리에서 장단을 짚는 고수(鼓手)나 청중들이 창(唱)의 사이사이에 흥을 돋우기 위하여 삽입하는 소리를 '추임새'라고 한다.

고수나 청중이 소리판의 흥을 돋우기 위해 곁들이는 조흥사(助興詞) 및 감탄사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추임새라는 말은 '위로 끌어올리다' 또는 '실제보다 높여 칭찬하다'라는 뜻의 '추어주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얼씨구", "얼씨구야", "얼쑤", "으이", "허이", "허", "좋다", "아먼", "잘한다", "그러지" 등이 그 예이다. 판소리 외에 민요, 잡가, 무가 등 다른 성악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전통연희사전)

<심청가>를 부를 때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부분에서 감동의 추임새가 나온다. 또 <춘향가>에서도 이도령이 어사 출두하여 춘향이를 살려낼 때 공감의 추임새를 한다.

부모와 자식들이 한 공간에 살면서 드라마틱한 삶을 연출하는 무대가 가정이다. 가정의 삶을 판소리로 비유하면 자녀는 창자(소리꾼), 부모는 고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창자인 자녀와 고수인 부모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과 교감이 사춘기 인생판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열린 예술'이다. 따라서 고수인 부모는 창자인 자녀를 격려하고 고무하기도 하며, 창자의 소리가 빨라지면 늘여주고 늘어지면 거두어 주듯이 사춘기 삶의 속도를 조절해 주기도 해야 한다. 고수의 소리는 창자의 소리를 방해하고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요 흥을 돋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모의 소리도 이와 같아야 한다.


사춘기를 겪는 아들들의 삶의 연출에 나는 적당한 추임새를 하지 못했다. 리액션이 부족했다. 온갖 내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었다. 창자와 고수가 하나 되어 흥이 있는 무대를 만들어 가듯 해야 했다. 창자인 아들들의 부족하고 서툰 행동에 부모가 고수답게 끌어 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 우리 가정의 세 번째 사춘기가 지나가고 있다. 딸의 사춘기는 고수답게 추임새를 해 주자. 딸이 반응할 수 있는 리액션을 해 주자.

"아빠, 인생은 리액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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