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에 골프모임이 있어서 연습을 하기 위해 골프채 몇 개를 꺼냈다. 가방째 들고 가지 왜 불편하게 낱개로 가져가냐고 아내가 묻는다. 나는 무겁고 불편해서 필요한 것만 챙긴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10년 전 사서 지금까지 신고 있는 골프화를 살펴보았다. 한 동안 사용하지 않았어도 멀쩡했다. 밑바닥은 거의 닳지 않았다. 새것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 골프화는 골프 그만둘 때까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을 꺼넸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은 또 생각을 깊게 만들었다. "왜 욕심이 없어요. 더 열심히 쳐서 골프채도 업그레이드시키고 골프화도 새 것으로 사지. 왜 노력을 안 해요?" 나는 말했다. "그렇게 하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가능하지요" 아내는 말했다. "적당히만 하면 되잖아요." 그렇다. '적당히'만 하면 된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골프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물론 마음적 여유도 없었다.
골프를 배운 것은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였다. 때론 골프공을 치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청주에서 골프를 치는데 중간에 전화를 받고 집에 가야 했다.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 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골프를 치지 않았다. 집에 있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남편 역할, 아빠 역할, 가장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했다. 혼자 기분 좋기 위해 가정을 벗어나 골프장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한 순간의 기쁨을 위해 평생을 힘들고 싶지 않다. 이기적이라는 말도 듣기 싫다. '뭐 남편이 저래? 뭐 아빠가 저래?'라는 말을 듣기 싫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집에 있는 것이 마음 편했다. 골프 트라우마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을 왜 나는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말로 풀어내지 못하는 응어리진 마음에 해빙기가 찾아올까? 세월과 함께 내 마음은 썩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벙어리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