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충격을 가져온 영상 하나를 보았다. <"잘못했습니다" 임창정, 나쁜 길 가는 아들들 위해 꿇은 무릎>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임창정은 5명의 아들들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 두 아들들이 어떤 한 아이를 괴롭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아들들의 아빠 임창정은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나의 생각을 벗어났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괴롭힘을 당한 아이의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나온 그 아이의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한 두 아들들이 아닌 아빠가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그것도 두 아들들이 보는 가운데. "잘못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잘못 키웠습니다." 자기들의 잘못된 행동에 아빠가 다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본 아이들. 충격이었을까? 그 후로는 그런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깨우침을 준 것이다.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영상을 보니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춘기 아들이 학원 친구들과 함께 장난 삼아 마트 진열대의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일이 있었다. '도둑질을 하다니'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아들을 데리고 마트 계산대로 가서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정당한 값을 지불했다. 거기까지 였다.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에 대해 느끼기는 했을까? 계산만 해주면 된다는 생각 이상을 해 보지 못했다. 그 정도면 아들도 무언가 깨닫게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다른 사람 앞에서 아니라 바로 아들 앞에서였다. 내가 아들 문제로 심각한 상황 속에서 흔들거릴 때 최후의 통첩이기도 했다. 애원하듯 무릎을 꿇었다. 아들이 사춘기의 바람을 극심하게 탈 때 마음을 돌이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빠가 이렇게 빈다. 제발 돌아와라." 그동안 어떤 방법을 다 해보았으나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아들에게 무릎 꿇고 부탁해 보았다.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아빠로서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버려져도 상관없었다. 아들이 돌아올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제발 그러지 마요.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일어나요. 아이씨" 이유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었다. 나는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아들을 살리고 싶었다. 한 없이 헤매고 있는 사춘기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들의 사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창피를 무릅쓰고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결과는 기대를 벗어났지만 무엇이든지 해보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이것이 씨앗이 되어 마음이 움직이길 바랐다.
무릎으로 전하는 말
나와는 달리 아내는 시간만 나면 하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로서 잘못한 것과 아들이 속히 제 위치를 찾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눈물로, 무릎으로 기도했다. 어떨 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있는 말 없는 말 다하면서 아들과 전쟁을 치르더니 어느 순간에는 살리는 사랑의 기도를 해 준다. 아들이 없는 혼자만의 비무장지대에서 무릎으로 말하고 있는 아내. "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갈까? 지금처럼 사랑의 기도만 해주면 덜 힘들 텐데" 내가 너무 이기적일까? 너무 무관심한 것일까? 아내와 다른 나의 행동에 나도 이해가 어렵다. 무엇이 맞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갈 뿐. 아내와 나의 무릎으로 전하는 모습은 다르지만 마음은 한 방향이 되어 아들의 마음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