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에 나오는 글이다. 상처 입은 마음은 꿰매기 어렵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소설 '남한산성'에 이런 장면이 있다. 성 안에 먹을 것이 없어서 말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군병들에게 추위를 막으라고 나눠주었던 가마니로 말죽을 끓여 먹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때 누군가 반대하며 말했다. "말은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지만, 백성과 병사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돌이키기 어렵다" 그렇다. 하나를 보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고 옳은 것 같다. 굶어 쓰러지는 말을 보면 당연히 뭐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섭섭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 선택은 옳은 것일까? 누구를 중심하고 있느냐, 누가 더 소중하냐? 한 가지 말고 두 가지 이상을 살펴야 한다. 특히, 마음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 그렇다.
하나의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할 때면 다양한 사람들과 물건, 장비들이 등장한다. 주연, 조연, 스태프, 각종 촬영장비와 무대 복장 등이 있다. 통상 주연 배우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렇다고 해서 주연 배우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연 배우를 더 드러나게 하기 위해 조연 배우의 역할이 중요할 때가 있다. 한 영화나 드라마는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할 때 인기가 있고 잘 구성되었다고 평가를 받는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녀들과 부모,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 등의 역할이 있다. 사춘기 자녀를 생각한다면 주연 배우는 누구인가? 당연히 자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자녀의 사춘기를 놓고 갈등을 겪는 집안을 보면 어떤 모습일까? 주연 배우인 자녀들이 청소년 무대에서 잘 성장할 수 있게 제 역할을 해야 할 부모들이 조연 배우인 것을 망각해 버린다. 그런 나머지 주연 배우를 뒤로 밀어내고 조연 배우 부모가 주연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때부터 주연 배우로 발탁된 자녀들과의 사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조연은 주연을 위해서, 주연은 조연의 도움을 받으면서 갈 때 좋은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주연 배우 자녀의 인생 시나리오는 자녀가 가지고 태어난다. 그 시나리오대로 잘 이끌어 주면 되는데 부모의 시나리오대로 자녀를 이끌고 가려하니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멀어진다. 한 번 멀어진 마음은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 마음에 돋친 가시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는 부모의 무대에서 주연이듯 자녀들은 그들의 무대에서 주연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않을까? 따뜻한 말 한마디로 주연 배우 자녀들을 응원하는 것이 조연 배우 부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