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인왕산은 가장 높은 자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다
인왕산은 높지 않다.
해발 338.2미터.
도심에서 접근하기 쉽고,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
그래서인지 서울의 여러 명산 중
유독 이 산을 찾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낮다는 건
단지 고도의 문제가 아니다.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고,
더 자주 마주친다는 뜻이고,
그만큼 더 오래 지켜봤다는 뜻이다.
사람은 높은 산을 우러러본다.
하지만 산은
자신보다 낮은 자리의 삶을 본다.
멀리 있는 북악산보다
가까운 인왕산이
더 많은 표정과 더 다양한 걸음을 기억한다.
높은 산은 웅장하지만,
가까운 산은 친숙하다.
친숙하다는 건 더 잘 보인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숨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치는 높은 자리에 올라
멀리 보려 애쓴다.
그러나 리더십은
낮은 자리에서 더 잘 보인다.
인왕산은
권력자의 행동뿐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까지도
함께 기억한다.
누가 진심으로 따랐는지,
누가 침묵했고, 누가 떠났는지.
그것은 높은 곳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그래서 이 산은 말한다.
"나는 멀리 보지는 못해도,
너를 더 가까이에서 오래 봤다."
높은 산이 위엄을 주었다면,
이 낮은 산은 판단을 준다.
높은 곳은 환호를 들었지만,
이곳은 귓속말을 들었다.
역사는 종종 높은 자리에서 쓰이지만,
그 진실은 낮은 자리에서 기록된다.
인왕산은 그런 기록의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