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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iantak Nov 05. 2020

대나무의 느림

큰일을 이루려고 조금 늦을 뿐이야

키 184cm, 손홍민 선수
내 작은 아들 키 184cm
키는 같지만 비교할 수 없는 격차의 선수


손홍민 선수와 내 작은 아들은 키가 같다. 축구계의 레전드들 중에 키가 작은 선수들이 있다. 펠레 173cm, 마라도나 165cm, 메시 170cm. 키의 열세를 뛰어넘는 실력으로 축구계를 주름잡았던 선수들이다. 단순히 키만 보고 선수로서의 성장을 막았다면 결코 볼 수 없었던 선수들이다.

작은 아들을 볼 때면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축구가 전부였던 아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학교를 입학하고도 축구를 잊지 못해 대학을 포기하고 축구를 다시 배워보겠다고 뛰어들었다. 비록 지금은 프로리그의 K-4 선수이지만 이 또한 대단하다. 학생 시절 축구선수도 아닌 아들이 대한축구협회 프로 선수에 가입되었고, 지역 K-4 선수가 되었다. 그 팀의 대부분은 학생 시절 축구선수들이다. 비선수 출신으로 그들과 훈련하고 경쟁한다. 지금은 주전 명단에 포함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단계에 있는 선수지만. 이렇게 될 것 같았으면 중학생 때 축구선수를 시킬 걸 그랬다. 키도 작고 좋아하기는 했지만 배움에 열정은 없어 보여서 축구선수로 키우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설득해서 취미로 하고 공부하라고 했던 것이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작은 아들의 길을 막았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미리 가능성을 예단해 버렸던 것이 실수였을까? 고등학생이 되자 갑자기 키가 크기 시작했다. 184cm의 키. 이 외모에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선수냐고 물어본다. 타고난 소질과 보이는 가능성이 없었던 아들, 학생 시절에 축구선수의 길을 열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184cm의 손홍민 선수처럼은 될 수 없었을지라도 K-4가 아닌 다른 수준의 선수가 되어 있을까?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게야.

중국의 모소 대나무 이야기가 생각났다.

중국 동부 지방에 새로 이사 온 장사꾼이 있었다. 그 장사꾼은 이 새로운 터전에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농부들이 대나무를 키우는 방법이었다. 농부들은 수년 동안 온 정성을 다해 대나무를 심고, 키우지만 그 대나무는 4년이 지나도 불과 3cm밖에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사꾼은 그런 농부들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이 대나무가 4년이 지나고 5년째가 되자 6주 만에 15m 이상 자라게 되었고 그곳은 울창한 대나무 숲이 되었다.

그 광경을 믿을 수 없었던 장사꾼은 궁금해서 한 노인에게 물었다. 그 노인은 대답하기를, "‘모소’라는 이름을 가진 이 대나무는 순을 내기 전에 먼저 뿌리가 땅속으로 멀리 뻗어 나간다네. 그리고 일단 돋으면, 길게 뻗은 그 뿌리들로부터 엄청난 자양분을 얻게 되어 순식간에 키가 자라는 것일세. 5년이라는 기간은 말하자면 뿌리를 내리는 준비 기간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도전한다. 그리고 부모라면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면서 이런저런 투자를 한다. 자기를 위해서든, 자식을 위해서든,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라면 제자들을 위해서든 투자의 결과가 빨리 나오길 바란다. 인간의 속성일까? 우리나라 속담에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장래에 크게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다르다는 말이다. 이 속담에 의하면 둘째 아들은 축구선수로는 될 성부른 나무가 아니었다. 우리 부모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축구선수 감독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는지 취미로 가르치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렇게 둘째 아들의 길이 정해졌다. 자신의 내면의 마음에 있는 길이 아닌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된 길을 따라간 것이다.

 "···저깟 녀석을 공부를 시켜보겠다구? 흥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게야. 저깟녀석 때문에 공연히 좋은 세월 허송세월 하지 말고 속 차려야 한다, 속 차려야 해." 박완서의 소설 '꿈을 찍는 사진사' <꼭두각시의 꿈> 중에서

 '큰일을 이루려고 조금 늦을 뿐이야'

반면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크게 될 사람은 늦게라도 성공한다는 말를 뜻한다. 둘째 아들을 대기만성형으로 보고 키웠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아들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어린이백과에 나온 대기만성에 대한 이야기를 교훈 삼아 보았다.

해가 뜰 무렵, 최염 장군의 집에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내 생전에 이 집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보네.”
“누가 아니라나, 벼슬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야. 최염 서방님이 높은 장군이 되었다 하니 너도나도 인사하겠다고 이렇게 난리들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아낙들의 수다는 끝이 없었어요. 지나가던 최염의 귀에도 이야기가 들렸지만 모르는 척 지나쳤어요. 얼마 전 조조의 부름을 받아 관직을 받고 돌아온 후부터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들어선 사랑채에는 집안 어른 몇몇 분도 함께 계셨어요.
“염아, 저녁에 집안 어르신들이 모두 모인다고 하는구나. 림이네 집에서 모인다니 함께 가자꾸나.”
“예, 아버님.”
최염은 오랜만에 사촌 동생인 최림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최염과 최림은 어려서부터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거든요.
저녁이 되자 친척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어요. 최염도 최림 옆에 앉아 오랜만에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최씨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입을 열었어요.
“나는 염이가 큰 인물이 될 줄 벌써부터 알았지. 공부며 무예 솜씨며 어려서부터 남달랐으니까.”
“맞습니다. 이제 장군도 되고 했으니 우리 집안을 더 크게 일으키겠지요? 하하!”
어른들은 하나같이 최염을 칭찬하기에 바빴어요.
“그런데 최림 자네는 아직도 공부 중이라고?”
“네. 아직······.”
최림이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였어요.
“그 나이가 되도록 벼슬길 문턱에도 못 가고 있으니 앞으로 어쩌려는지······. 쯧쯧.”
“공부가 안되면 무예라도 뛰어나든지.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 원.”
친척 어른들이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최림을 쳐다봤어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최림은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갔어요. 최염은 마음이 불편했어요.
“어르신, 옛말에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림이도 크게 될 사람이라 조금 늦어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염은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말했어요. 그러고는 최림을 따라 밖으로 나왔어요. 달빛이 뜰 안으로 들어와 두 사람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어요. 최염은 최림의 두 손을 꼭 잡았어요.
“동생, 큰 종이나 큰 솥이 어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겠나?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
“예, 형님. 뜻을 이룰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최림은 최염의 진심 어린 위로가 고마웠어요.
다음날, 최림은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았어요.
“그래! 나는 더 크게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최림은 주문이라도 걸듯 큰소리로 외쳤어요. 그날부터 더욱 열심히 공부한 최림은 마침내 관직에 나아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곧 황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삼공 중의 한 사람이 되었지요.   
출처: (초등 선생님이 뽑은 남다른 고사성어, 2013. 12. 23., 박수미, 강민경, 문구선, 조윤이, 김정숙, 윤유리)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대기만성형이 아닐까? 일정한 노력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 그 시간이, 그 노력이 얼마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뿐이다. 중국의 모소 대나무처럼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얼마나 참고 기다려 줄 수 있느냐가 문제일 뿐.

 


둘째 아들에게 7년이라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에 지쳐버린 지금, 이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봄의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올라오는 지금. 이때가 대기만성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내하며 노력하는 가운데 기다리다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4년 뒤 6주 만에 15m가 자란 모소 대나무처럼 좋은 결과를 보게 될 희망을 품고. 나의 둘째 아들도 지금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임을 확신하며 오늘도 내 마음을 위로해 본다. 지금은 아들 자신만의 성장 속도에 따라 크고 있는데 부모의 눈에는 느리게 보일 뿐이다. 빨리빨리 말고 느리게 느리게 가면서 아들 속도에 맞춰 걸어가며 바라보자. 그러면 느린 것이 아니라 정상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보일지 모른다. 마음의 속도를 느리게 할 때 볼 수 있는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삶의 위로를 준다. 대나무에서 배운 느림의 힘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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