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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Sep 15. 2019

#_마흔둘의 반대말은 스물하나다

모든 생성은 상실을 담보로 한다

언제까지나 열아홉 살 일 줄 알았다. 여전히 내 속에는 19살 고3이었던 청소년 한 명이 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나는 19살 때부터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몸은 늙어가겠지만.


올해로 벌써 마흔둘이다. 이런 나이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인생의 선배님들에겐 여전히 ‘좋~은 나이’라고 불릴, 또 인생의 후배님들은 아직 짐작하기 힘든 나이.

문득 생각해 보니 마흔두 살의 반대말은 딱 그 절반인 스물한 살 같다. 아마 마흔 이후 모든 나이의 반대말은 그 나이의 절반일 거다.


나는 재수를 해서 21살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 해 봄 첫사랑을 만났고, 모두가 한 번쯤 겪어봄직한 대학생활이라는 것을 누렸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었고,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무엇에도 얽매일 필요 없었고, 나 외에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던 때. 그때가 그리우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그때 내가 가진 그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전혀 몰랐으니까. 그저 입시에서 해방되어서 좋았고, 자유로워서 좋았을 뿐이었다.


이제 결혼 10년 차 9살 딸과 8살 아들을 둔 아빠이자, 사람들에게 독서를 강의하고, 글을 쓰고, 책방을 기획하는 사람이 된 지금은 할 수 없는 것들이 일상이었던 시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비록 파릇파릇한 젊음도 무한리필되던 시간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는 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어쩌면 성숙은 젊음과 맞바꿀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잃어버리는 가치만 생각한다. 물론 나라고 다르지 않다. 잃어버리는 것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아련할 수밖에 없다. 대신 나이가 들수록 얻을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마흔이라서 할 수 있는 생각, 초등학생이 된 아들딸을 둔 아빠라서 할 수 있는 생각, 이젠 지인의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더 많이 참석하게 되는 나이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이 있으니까.


모든 상실은 생성을 담보로 한다. 그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다.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여든네 살까지 산다면 그때 오늘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여든네 살의 반대말은 마흔두 살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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