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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Sep 04. 2019

#_하루키와 히긴스가 만들어준 매직

문학과 음악이 만들어 내는 놀라운 순간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논다. 

축구를 하다가 술래잡기를 하다가 볼 때마다 노는 곳이 다르다. 

운동장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 계단모양의 기다란 벤치에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의 기분 좋은 대화소리가 들린다. 


하루키의 글을 읽으며 혼자 키득거린다. 잠을 못잔 탓인지 하품을 한다. 문득 무료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버튼을 누른다. 에디 히긴스의 재즈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해가 지는 학교운동장은 순간 영화세트장이 된다. 나는 사색에 빠진 주인공이 된다. 

숨을 깊게 들여 마신다. 늦은 여름의 냄새가 난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달콤 씁쓸한 꽃향기를 살짝 남긴 채 스쳐간다. 학교건물 뒤편으로 보이는 키 큰 건물들과 그 모든  빌딩의 머리를 포근히 감싼 하늘은 마치 파란색 보자기 같다. 해는 이미 다 넘어가고 핑크빛 노을이 비친다.


그 모든 순간들의 피아노 건반의 현란한 소리와 함께 기억 속의 한 폭의 그림처럼 각인된다. 

곡이 바뀌었다. 조금 더 잔잔하고 쓸쓸한 곡이다. 해가 더 기울고 제법 어둠이 짙어졌다. 운동장을 비추는 등이 켜지고 좀 전까지 보라빛이 감돌던 구름은 마치 하늘 벽에 묻은 먼지처럼 회색빛이 되었다. 


몇몇은 트랙을 달리고 몇몇은 여전히 앉아서 이야기삼매경이다. 그리고 나는 풍경을 감싸는 피아노선율에 빠져든다. 잠시 책을 덮을 수밖에 없는 이런 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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