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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16. 2019

#_사라짐에 대하여

죽음은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다.

아침 출근길에 거리에 핀 벚꽃을 보았습니다. 꽃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지만, 벚꽃은 멀리서 보아야 더 예쁜 꽃이기도 합니다. 봄이 오면 불현듯 찾아와 찬란하게 피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꽃입니다. 그래서 벚꽃이 아름다운 게 아닐까요? 그토록 눈부시게 피었다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사람들 가슴 속에 기억되는 게 아닐까요? 만약 벚꽃이 여름에도 가을에도 지지 않고 피어 있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봄마다 진해와 여의도 윤중로로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어느 해부터인가 활짝 핀 벚꽃을 보게 되면 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 하구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개념적으로는 알고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하지만, 아무도 체험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잖아요. 우리는 죽음을 알면서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종종 오늘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아침 출근길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봄 햇살이 나뭇가지 위로 내려 앉아 나무 위에 새로 돋아난 새순을 간지럽히는 모습이 보이죠.

사람들의 수많은 표정에서 살아있는 순간의 생동감이 보이면서 생명자체에 대한 존엄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나도 죽는다’는 평범한 사실이 인생을 가장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현미경이 되는 순간입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 더 이상 “어서 들어가”라고 말하고 바삐 돌아서는 대신, 아빠를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아들의 눈빛과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이 순간, 어린 아들 녀석과의 짧은 인사가 아이가 평생 기억하게 될 아빠의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지친 아내를 꼭 끌어안게 됩니다. 못난 남편이랑 결혼해서 호강시켜주지 못해 몸도 맘도 지친 그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사랑하는 마음 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수많은 급한 일들이 ‘만약 내가 죽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내 삶에 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더 이상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과의 연락을 미룰 수가 없어집니다.


그저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인식 하나가 제 삶의 관점을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하고 급한 많은 일들이 있지만, 내가 죽는다는 사실보다 더 무거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인식할 때 자유로워집니다.

지금 내가 가진 시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가장 가치 있는 순간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와 명예도 어떤 쾌락도 어떤 권위도 내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죽음보다 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지나갈 때 잠깐의 시원함을 느끼지만, 지나가면 사라지는 바람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죽음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면 죽을까봐 두려워하며 살 수 밖에 없겠지만, 죽음을 건강하게 이해하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기 때문에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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