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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곰 Jan 26. 2020

#_신년이란 무엇인가?

매년 두 번의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해마다 2번의 새해를 맞이한다.
신정과 구정, 양력 1월 1일과 음력 1월 1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올해는 설날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보냈다. 어젠 서울 시청 앞 스케이트장에서 아이들과 아내는 스케이트를 타고, 저녁엔 찜질방으로 갔다. 설날 아침엔 모처럼 늦잠을 자고, 점심엔 함께 떡볶이를 해 먹고, 오후엔 아이들 인라인과 자전거를 타러 한강공원을 다녀왔다.
수십 년간 명절마다 가족들을 만나러 민족 대이동을 하고, 명절 분위기를 물씬 느끼다가 정말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그저 평범한 주말을 보내듯이 연휴를 보내는 느낌이 묘하다.

무엇이 정상일까? 물론 명절은 명절답게 보내는 게 좋다. 그런데 그 명절다움이란 무엇인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새해가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나이를 세기 위해서다.
나이를 세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내가 살아온 날을 반성하고,(이 나이 되도록 여태 뭐하고 살았나 돌아보는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을 계획하기 위함이다.(그래도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아무것도 안 하고 의미 없이 죽을 순 없으니까.)

삶의 명제는 단순하다.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한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이 짧은 문장에 "그렇다"라고 답하기가 그렇게도 어렵다.
나머지는 대체로 쉽지만, "잘"이라는 한 단어에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잘"살기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첫 번째로 무엇이 "잘"사는 것인지 스스로의 기준을 잡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다. 두 번째는 스스로 원하는 삶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잡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가장 나다운 삶의 기준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에 맞는 삶을 살아내기가 어렵다.
명절에 만나는 친적들이 요즘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을 때 인사치레로는 "잘 지낸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마음 한구석은 조금 불편한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해석해 볼 때, 우리가 맞이하는 두 번의 새해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양력 1월 1일이 되면 우리는 개인적인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지난 한 해의 반성과 더불어 새로운 한 해의 계획을 잡아보는 시간이다.
반면 음력 1월 1일이 되면 우리는 사회적인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내가 혼자서 생각할 때 빠지기 쉬운 착각이나 오류가 단숨에 정리된다. 놀라운 팩트 폭격을 마주한다.
실제 내 삶에서 나의 위치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뼈아픈 피드백의 시간이다.

어쩌면 명절이 불편한 이유가 아닐까?
내가 마주해야 하는 진정한 신년은 양력도 음력도 아니다. 그건 나의 실제 삶을 마주하고, 내 삶의 "잘"사는 기준을 다시 세우고, 그 기준대로 살아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하여 어떤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내면의 나이가 들지 않아 여전히 애 같고, 어떤 사람은 겉은 아직 청년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나이는 이미 중년 이상의 중후함을 가진다.

나의 진짜 나이는 몇 살인가?
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를 맞춰가느라 정작 스스로 나이 드는 방법을 여전히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닌가?

스스로 성장의 기준을 알고 그에 따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물론 나부터가 그런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부디 나이가 들수록 나이 드는 게 더 기다려지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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