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대원 Feb 07. 2020

#_질서가 변화를 만든다.

변화의 시작은 충격이지만, 변화의 본질은 질서다.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했듯 모든 변화는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시작된다. 뉴턴이 말한 운동 제 1법칙(관성의 법칙)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외부의 힘이 없이 운동하는 물체가 혼자 방향을 틀거나, 정지해 있는 물체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이건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본 철학계를 놀라게 한 지바 마사야는 <공부의 철학>에서 ‘공부는 자기 파괴다’라고 규정한다. 이 역시 기존에 스스로의 틀을 깨지 못하면 변화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이렇듯 세상의 이치는 변화를 위해 어떤 형태로든 충격을 필요로 하고, 사람들은 그걸 ‘동기부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변화를 위해 지속적인 충격을 요구하기 시작할 때다.


변화의 시작은 충격이지만, 변화의 본질은 질서다. 애당초 우주가 창조될 때도 혼돈(chaos)에서 질서가 부여된 결과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그 질서를 cosmos라고 불렀고, 우리는 그 단어를 ‘우주’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우주가 거대한 하나의 질서인 것이다. 그리고 그 우주는 늘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즉, 변화 자체가 질서라는 뜻이다. 결국 질서는 루틴한 변화의 반복이다. 


오늘은 2020년 2월 4일 입춘이다. 봄이 옴을 알리는 절기다. 매년 봄이 ‘다시’ 돌아온다. 계절이 변화하는 질서가 수십억년간 유지되고 있다. 이 거대한 질서 속에서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내 삶의 혼돈 속에서 어떤 질서를 만들고 있는가?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즉, 혼돈과 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말’이다. 그럼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나는 내 삶을 어떤 ‘말’로 규정하고 있는가? 나다움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한 타자성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타자 속에서 발견되는 나의 모습도 ‘나다움’이고, 내가 스스로 규정하는 나의 모습도 ‘나다움’이다. 전자에 매몰된 삶이 수동적이라면, 후자는 주체적이다. 봄을 알리는 변화의 절기 앞에서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점검해 본다.

마흔번 넘게 다시 맞이하는 봄이지만, 올 봄에 불어올 바람은 더 따뜻하고, 싱그러운 에너지가 넘칠 것만 같다. 내 삶의 방향에 맞는 변화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계절이길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_신년이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