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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Mar 09. 2020

#_믿음에 대하여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는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옛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 사도 바울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공동번역)


우리는 믿을 만한 것에 믿음을 가진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믿기 힘든 상황이나 믿기 힘든 사람을 대할 때 드러난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으냐에 따라 그의 삶은 달라진다.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사는 이유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1955년에 태어난 855명을 대상으로 종단연구(평생 동안의 발달추세를 연구하는 것)를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고위험군의 아이들 201명은 대체로 사회부적응자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50년간 그들의 생애를 관찰하며 연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201명의 고위험군 아이들 중 36%에 달하는 73명이 좋은 환경과 높은 교육수준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 못지않게 성공적인 삶을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이 믿기 힘든 결과를 더 자세히 연구한 결과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없고 73명의 아이들에게만 존재했던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 아이들 곁에는 부모나 선생님, 친척, 아니면 마을사람 중 누군가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이해해주는 어른이 한 명이상 있었다는 점이었다. 카우아이섬 종단연구를 진행한 에미워너 교수는 이것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말하며, 그것이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하고 긍정적인 힘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한명”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만의 힘으로 자기신념을 높여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 신념이 타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 신념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 사도 바울 <고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공동번역)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는 구절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글이다. 그 앞의 내용을 보면 마치 카우아이섬 종단연구의 결론처럼 보인다. 사랑이 가장 위대한 이유는 한 명의 온전한 사랑만으로도 누군가가 삶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진 자만이 희망찬 삶을 살 수 있고, 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다시 사랑으로 품을 수 있게 된다. 사도 바울이 말한 사랑은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른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강의나 독서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 분들을 볼 때 가끔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잠재력이 내 눈에만 보일 때가 있다. 이건 나 개인의 강점(talent)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중요한 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나 잠재력을 가졌어도 옆에서 그걸 알아봐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능력이 개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여 강의를 몇년째 해오면서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을 얻었다. 강의는 내가 아는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잠재력을 스스로 믿을 때까지 옆에서 믿어주는 일이었다.


강의는 내가 아는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잠재력을 스스로 믿을 때까지 옆에서 믿어주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믿음을 준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제 조금씩 그 일에 눈을 뜨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온갖 훈육으로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부모가 정해놓은 답대로 키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가능성을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어주는 존재가 되어주고자 한다. 


우리에겐 믿음이 필요하다. 비록 작은 씨앗하나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거기서 싹이 트고 줄기와 잎이 무성해지고 점점 자라 한그루의 울창한 나무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 믿음 말이다. 그 씨앗은 모두에게 있다. 나에게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느냐 못 틔우느냐는 그의 “소망”을 변함없는 “믿음”으로 지켜봐주는 “사랑”하는 한 사람의 여부에 달려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믿음을 주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늘 신뢰받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살았는지 돌아보면 반성할 일들 뿐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아가 나 역시 그 믿음의 증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그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고, 믿어주고, 상생하면서 사랑으로 채워져 가는 공동체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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