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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Mar 05. 2020

#_이기든 지든 재미있는 것

코로나가 심각해도 인생은 지나간다.

 종종 아들과 같이 온라인 게임을 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게임은 <클래쉬 로얄>이라는 게임인데, 3분동안 여러 가지 병사들을 배치해서 상대방 성을 먼저 함락시키면 이기는 게임이다. 본인이 하다가 잘 안되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는데, 하다보면 나도 몰입해서 둘이서 질 때는 소리지르고 이기면 하이파이브까지 하면서 열심히 하게 되었다. 간신히 몇 판 이기고 나서 이젠 아들에게 하라고 다시 아이패드를 건네주었다.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아들은 연달아 패배의 쓴맛을 본 듯했다. 연이은 패배가 아쉬웠는지, 식탁에 앉아서도 계속 한탄하는 목소리로 괴로워했다. 그만하고 이제 밥먹으라고 말해도 아이는 계속 머리를 감싸며 장난반 진담반의 신음소리를 냈다.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석우야, 게임은 재미있으려고 하는거잖아.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거야. 물론 이기면 더 좋겠지만 지더라도 재미있게 하자.”


거기에 덧붙여 게임에 졌다고 그렇게 투덜대면 이젠 게임을 못하게 하는게 낫겠다고 했다. 아들은 느낀 게 있었는지 아니면 진짜 게임을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나를 보며 씩 웃더니 제대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비록 아들에게 한 말이었지만, 순간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상반기에 여러 가지 강의 일정을 세워두었는데, 최근 들어 신종코로나(COVID-19)로 인해 대부분의 강의 스케줄이 취소되고, 내가 진행하려는 일정도 줄줄이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경제적 타격도 있거니와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결가능한 일이 아니라 뭔가 무기력함을 느끼는 요즘이었다.


생각해보면 인생도 똑같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이기든 지든 인생(게임) 자체를 즐긴다는 자세로 대한다면 그 과정 전체가 즐거운 일이 된다. 하지만 잘될 때만 재미있고, 내 맘대로 안 될 때마다 괴로워한다면, 생각대로 되는 날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더 많은 인생은 짜증과 괴로움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은 내 생각과는 전혀 반대로 흘러가고 있지만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짜증내고 괴로워해봐야 소용없음을 안다. 오늘 점심에 밖을 나갔더니 날씨는 왜그리 화창한지. 바이러스만 없으면 얼마나 기분 좋은 하루일까 생각했었다.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불과 1-2주 사이에 우리 마음이 많이 달라졌을 뿐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비관적이고, 답답하게 바뀌었을 뿐이다. 분명 지금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테고, 필요이상으로 안달하면 보낸 날들을 돌아보며 후회한들 이미 늦은 후일테지.


내가 가는 길에 뽀족한 돌맹이가 많아 발이 아프다고 해서 가는 길 전체를 다 포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내 신발을 튼튼한 운동화로 갈아 신는 게 훨씬 쉽고 현명한 일이다.

아들의 뜻하지 않은 짜증이 지금 답답한 내 현실을 전혀 다른 관점에 보는 계기가 되어 고마운 저녁이다. 아무래도 게임을 한판 더 시켜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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