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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Jul 31. 2020

#_책 32만 권을 업로드하며 느낀 점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작은 조각일 뿐이다

온라인 서점을 준비하면서 매일매일 책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내가 거래하는 여러 채널들의 책들을 리스트(엑셀)로 정리하고 쇼핑몰 업로드 포맷에 맞게 변환해서 책을 올린다. 도매 기반의 책방이다 보니 상세 설명도 없고, 그나마 최대한 책의 얼굴이 되는 표지 사진 정도는 넣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내가 도매로 책을 주문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지금 만든 쇼핑몰은 제법 편리한 축에 속한다. 수십 명의 인력이 팀으로 운영하는 대형 온라인 서점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작은 서점을 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어쨌거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온라인으로 멤버십 몰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늘 그랬듯 약간의 시간은 필요했지만 결국 시작했다.


처음 봉착한 문제는 '저 많은 책을 어떻게 다 올리지?'였다.

사실 한동안은 고민만 했다. 고민하면서 해결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늘 어떤 지점에서 막히고 말았다.

특별한 대책은 없었지만, 우선 일단 시작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생각으로 늘 막히는 지점은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얻을 수 없다.


처음엔 한 권씩 테스트로 올려봤는데, 한 권당 아무리 빨라도 1분 정도 걸렸다. 이미지를 찾고, 저장하고, 설정값을 하나씩 세팅하고 가격을 입력하는 일이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몇 초 만에 뚝딱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내가 최고 속도로 1분에 한 권씩 쉬지 않고 올린다고 해도 한 시간에 60권, 하루 4시간 자고 20시간씩 올려도 하루에 1200권밖에 못 올린다는 계산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몇 달을 할 수도 없겠지만, 반년 넘게 책 올리는 일만 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도래한다는 결론을 금방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상품을 대량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쇼핑몰 사이트에서 상품을 엑셀로 올릴 수 있도록 포맷을 제공했고, 그 포맷을 면밀히 살펴보니 내가 올려야 하는 책 리스트를 잘 정리하면 충분히 대량 등록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하나씩 방법을 찾아내어서 해결해 나갔다. 확실한 사실은 문제가 되는 상황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과 그저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일단 생각만으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답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은 행동하면서 함께 하는 것임을 다시 깨달았다.


두 번째 문제는 '내가 올릴 책 리스트를 어떻게 확보하지?"였다.

상황은 같아도 인식의 크기가 달라지면 질문도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가 더 많은 책을 읽고, 매일 성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거래처에 도움을 청했다. 누구도 요청하지 않으면 알아서 주지 않는다. 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요구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들이 부담 없이 도와줄 수 있는 일들 중에서 나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일이 분명 있었다.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부탁하는 방법밖에 없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스스로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서 타인의 무관심에 혼자 상처를 받는 일 말이다. 참 어리석은 일임에도 내 속의 "내면 아이"는 어린 시절에 부모가 알아서 나를 챙겨주던 것처럼 누군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힘듦과 아픔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그런데 그런 일은 99% 이상의 확률로 일어나지 않는다. 잠깐 딴 이야기를 했다. 어쨌거나 거래처에 요청한 도서 리스트들을 받아서 내가 올릴 수 있는 형태도 변형했다. 그 파일이 같은 형태라면 다른 시트에서 불러와 내가 필요한 정보만 모아놓은 별도의 리스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17만 권이 넘는 도서 리스트를 확보했다. 그리고 거래처 양식에 따라 내가 정한 중간 파일을 통해 업로드 파일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엑셀 함수들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클릭 한 번으로 처음 정리한 5천 권을 올려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업로드가 되질 않는 것이다. 살펴보니 한 번에 100개~200개만 올리라는 문구가 나와있지 않은가! 아!!! 물론 1-2백 권 단위도 좋긴 하지만 신속하게 하려면 최소한 몇천 개 단위로는 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떡하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일단은 협상(?)을 해보기로 했다. 100개~200개 단위라는 제법 포괄적인 형태로 표시가 되었다는 것은 300권이라고 안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3백 권을 올려봤다. 쉽게 올라갔다. 이번엔 5백 권.

역시나 올라가진다. 그렇다면 이번엔 1천 권이다. 확실히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파일 하나를 더 만드는 것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편이 낫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5천 권은 실패했는데, 1천 권은 성공했다면 그 중간값을 시도해보는 게 좋겠다 싶어 다음은 3천 권을 올려봤다. 30분 넘게 기다렸지만, 결과는 실패. 혹시 다른 문제일 수도 있어서 한번 더 시도해 봤지만 역시 실패. 그래서 다음은 2천 권으로 도전했다. 가까스로 성공.

이제 정해졌다. '한 번에 2 천권씩 나눠서 올리면 되겠구나!'


간신히 큰 산 하나를 넘었나 싶었는데, 더 큰 문제가 눈 앞에 벌어졌다.  업체에서 제공받은 리스트로 상품을 올려보니 이미지가 연결되지 않았다. 책 사진이 뜨지 않는 책방이 무슨 매력이 있단 말인가! 분명히 내가 모르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거래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방법이 없진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다 해줄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최소한의 부분만 달라고 공손히 부탁했다. 그리고 며칠 뒤 기분 좋은 메일이 왔다. 이미지가 포함된 4년 치(2016년~현재) 도서정보였다. 이제 이미지까지 자동으로 리스트에 적용되도록 함수만 적용하면 되었다.

그렇게 4년 치를 몇 주에 걸쳐 업로드하고, 추가로 방법을 찾아내어서 월 단위로 자료를 받아 1996년까지 20년 치 자료를 더 받아서 정리하고 책을 올렸다. 이미지가 없는 비거래 출판사는 출판사에 연락을 위해 이미지를 요청했다가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하기도 하고, 제법 큰 출판사라 어쩔 수 없이 주요 도서 일부를 따로 정리해서 업로드해야 했다. 2015년 자료는 너무 많아 1년 치를 따로 정리해야 했고, 2013~2014년은 2년을 묶어서 작업. 그렇게 1년 1년 과거로 내려가면서 도서 리스트를 정리하고, 쇼핑몰에 업로드하기를 한 달을 넘게 했다. 2 천권짜리 파일 하나 업로드하는 게 30분가량 걸리기 때문에 2만 권을 다 정리했어도 업로드하는데만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6월에는 아내가 암수술을 해서 일주일 넘게 병원에 있으면서 틈틈이 계속 리스트 만들고, 올리고를 반복했었다. 특히 수술을 받던 시간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 리스트를 정리하기도 했다.

아내의 치료 때문에 생각이 많기도 했지만, 저 수많은 책들을 책방 몰에 업로드하면서 책이 간직하고 있는 '시간의 역사'를 느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책이 출간된 시기의 내 삶의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느꼈다.


그렇게 책 32만 권을 넘어 지금은 35만 권가량 업로드를 했다.

세상에는 수천만 권 이상의 책이 있고, 한국에는 수백만 권이 넘는 책이 있고, 나는 다시 그중 일부인 30여 만권의 책을 올렸을 뿐이다. 그중 내가 설령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한들 내가 아는 세상이 거대한 진짜 세상 속에 얼마나 작디작은 한 조각인지 깨닫는다.


한 인간의 앎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고 싶다. 더 많은 세상의 진실이 궁금하다.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고 싶다.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누리고 싶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더 큰 세상 역시 나의 일부임을 느낀다.

잠깐이지만,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잠시 조우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영(靈)이 책에 깃들어 있음을 보았다. 책은 결국 생각하는 인간의 필연적 시간이자 존재의 역사였다.


내가 가는 길이 누군가의 삶에 좋은 책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길.

이제 그만 쓰고 이번 주 신간 업로드해야겠다.



* 한 사람이 하나의 책방이 되는 미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서점, 사이책방 멤버십몰이 곧 오픈합니다.

  http://www.sibook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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