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고미숙의 몸과 인문학(고미숙/북드라망)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by 변대원

#1


"앎과 자유, 건강과 지혜는 하나다"


이제까지 몸과 인문학은 전혀 별개로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의 편견이란 무서운 것 같아요.

나이가 들고 몸의 중요성을 인식할수록 삶에 대한 인식이 그저 내면의 영역이 아니라, 몸이라는 실체와 밀접하게 관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 책은 동의보감의 통찰을 바탕으로 내 몸이라는 구체적인 실체가 고전의 원대한 비전과 삶의 현실을 잇는 '인문의역학'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매트릭스 위에선 모두가 '자기 몸의 탐구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아는 만큼 자유롭고, 아는 만큼 살아내는 삶이죠.

서두에 언급한 대로 앎과 자유, 건강과 지혜는 진정 하나였던 것입니다.


몸의 원리를 이해하면 학교에 갇혀있는 학생들에게 벌어지는 현상도 쉽게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향해진다"는 니체의 말처럼 아이들의 분출하는 에너지가 몸으로 사용되지 못할 때 적대감과 원한이 싹트는 토양이 된다고 합니다. 그 힘이 나아갈 방향은 자기학대나 타자를 향한 폭력 두 가지 방향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자연과 생명의 순환운동을 통해 바라보면 통즉불통(通則不痛 - 통하면 아프지 않다)으로 진단 내릴 수 있는 것이죠. 피상적인 차원의 소통이 아닌, 생명의 순환에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몸에 대한 전반적인 통찰을 위주로 언급한다면, 두 번째 챕터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무의식적 교감능력에 존경을 표하는 저이지만, 이 책에서는 연성에겐 일상 자체가 자연이고, 곧 ‘자연의 비밀지’를 터득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문제는 현대 여성들은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법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나오는 통즉불통!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입니다.





#2


이 책이 재미있는 점은 일상의 현상들을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하되 다양한 동서양 인문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의보감에서 나오는 생명의 원천이 되는 정, 기, 신으로 인정 욕구에 목말라하며 과잉 표현과 이벤트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의 상태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타인의 인정은 누구에게나 아주 좋은 동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고 자신의 정을 남발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상태는 우선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가 아닐까요?


결국 몸도 마음도 조화와 균형이 중요함을 이야기합니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문명의 상식이 우리 삶을 삭막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 조화를 깨뜨린 상태를 디폴트 값으로 만들게 하고 그로 인한 문제를 또 다른 솔루션으로 풀게 만드는 연쇄적인 문제의 고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자신의 몸부터 균형을 되찾는 게 가장 중요한 순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몸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양질의 수면과 양질의 식단 적당한 활동(운동)이 기본이어야 하는데, 이 당연한 게 힘들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군요.(저도 운동하는 거 참 안 좋아했는데, 요즘 한 달 넘게 헬스장 다니면 이제 조금 습관이 잡히려고 하는 중입니다.)


몸과 사랑 파트로 넘어오니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에로스적 문제의식으로 접근합니다. 아주 설득력 있네요.

그러다 에로스의 끝판왕이 철학이라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게 되네요.

소피아는 철학이고, 필로스는 사랑이므로, 필로소피아(철학)는 곧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요. 하여 지성보다 에로틱한 것은 없다는 명언까지 투척해 주십니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사진으로 남겨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서 "지금, 여기"의 소중함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오직 삶의 현존성만 있는 상태.

이 찰나 안에 무량겁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마치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를 생각나게 합니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매 순간은 영원히 반복되는 상태!


오늘도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적으며 하루를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를 똑같이 영원히 반복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았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후회 없는 하루, 밀도 있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3


오늘 리뷰하는 내용에는 우리가 왜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많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먼저 고전과 글쓰기가 자립의 수단이라고 말하는 대목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가장 “나다운” 삶을 발견함으로써 얻게 되는 내면의 자립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요. 두 번째는 실제로 고전과 글쓰기를 통해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자립이겠지요.

부단한 공부를 통해 지식을 넘어 지혜와 통찰을 얻은 사람의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높을 수밖에 없죠. 함께 그것을 추구하는 인문학 공동체는 제가 꿈꾸는 ‘사이책방’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상생하며, 함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죠.


공부의 중국어 발음 그대로가 쿵후(工夫)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쿵후는 몸으로 하는 수련이고, 공부는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공부는 지식을 몸으로 체득하는 것인 겁니다. 몸으로 체득하려면 스스로 능동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자의 주체성 없이는 체득할 수 없기 때문이죠. 무작정 열심히 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열심은 “뜨거운 마음”이기도 하지만 책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심장(心)이 열(熱) 받도록 애쓴다는 뜻도 되기 때문입니다. 시험 치러가서 너무 긴장했을 때 먹는 약이 바로 청심환이죠. 청심(淸心), 말 그대로 열을 식혀서 심장을 맑게 한다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쫓아가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는 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공부의 방법으로 낭송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묵독으로는 알 수 없는 낭송의 매력!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원초적인 공부법이라는 것이죠. 특히 고전의 언어는 낭송을 통해 그 리듬을 몸으로 익힐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우리 몸으로 고전의 원대한 비전에 접속하는 것이라고요.


앎의 즐거움에 대한 파스칼 키냐르의 말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배우는 것은 강렬한 쾌락이다. …… 몇 살을 먹었든 간에 배우는 자의 육체는 그때 일종의 확장을 체험한다. …… 즉 문이 없던 곳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문 자체와 함께 육체가 열린다.”

공부가 쿵후라고 말한 것처럼 지성을 향한 육체의 문이 열리면서 거침없는 성장의 질주를 하게 되는 놀라운 쾌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을 조기교육이나 조급한 마음으로 성과만 내려고 덤빈다면 호흡만 가빠지고, 그릇은 작아지며, 온전히 자기다움을 갖춘 그릇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집니다. 대기만성의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마하든 조르바든 함께 읽고 쓰고, 공부하는 이 모든 프로젝트의 본질은 “성장”을 통해 나라는 그릇을 더 크게 확장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가진 놀라운 잠재력, 재능, 탁월함, 영웅성을 회복하는 것이지요. 한 달 동안 몰입해서 하는 것은 그 성장의 경험, 쾌락의 경험을 한번 맛보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능동적으로 교감하는 지혜도 배워야 합니다. 나 혼자서는 잘 안됩니다. 서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동반자가 있기 때문에 힘이 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네트워크를 통한 뜻밖의 만남은 타자와의 낯선 마주침입니다. 그런 네트워크의 교류가 바로 생명의 기본원리입니다.





#4


오늘로 이 책은 마무리할까 합니다.

책마다 다르지만, 좋은 책일수록 후반부에도 힘 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는데,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오늘 내용 참 좋습니다.


먼저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언급합니다. 관계의 능동성과 생리적 순환은 함께 간다고 말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언제가 죽는다는 뜻이며,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나만 건강하고 나만 잘 사는 삶은 결코 건강한 삶일 수 없습니다. 몸의 건강도 상생에 있고, 공동체의 건강도 상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은 사람과 책이 서로 어우러지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나아가 책을 통해 모두가 자기 삶의 탐구자이자 주인이 되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몸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배려의 현장이 바로 몸이기 때문입니다. 몸과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이 곧 공부고 삶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두려움에 대하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대의 의식이 이 경이로운 지상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인간들과 함께 나눠 가진 것이란 걸 안다면 삶의 방식 전체가 바뀔 것이다

나에 대한 공부는 나를 넘어 공동체의 상생까지 연결됩니다. 억지로 세상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이 그것이고, 삶의 가장 큰 기쁨에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이란 그런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인 것입니다.


공동체는 교환의 싸늘함이 아닌 교감의 따뜻함이 있는 곳입니다. 수동적 관계가 아니라 능동적 생명성이 있는 곳입니다. 관계의 교감은 시간과 공간과의 교감에서 출발합니다. 책 마지막 부분에서 청소란 공간에 대한 배려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약속은 시간과의 교감이 아닐까요? 시공간과의 교감이 어그러진 채로 내 몸이 제대로 관리될 리 없고, 내 관계가 관리될 리 없습니다.

그런 것이 기본기입니다. 책은 이런 작은 기본기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금까지 얼마나 무지한 삶을 살았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내 몸에 대한 이해 없이 관계를 헤아리려 하고, 가장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외면한 채 더 나은 성장을 도모했던 어리석음이 있었습니다.

자유와 상생, 성장을 통한 축적을 만드는 삶을 위해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내 “몸”에 대한 이해와 관리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올해는 보다 사소한 삶의 디테일에 신경 쓰는 삶을 그려봅니다.




* 이 글은 4일에 걸쳐 책을 읽으며 정리했던 글을 한데 모은 글입니다.

* 어느 시대보다 몸을 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시대이기에 더욱 '몸'을 제대로 이해하고, 쓸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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