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수련 (배철현/21세기북스)

인생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by 변대원

작년 어느 날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가 사이책방 맡은 편에 있는 노보텔이라는 호텔에 숙박한 적이 있어요. 근처에서 만났다가 체크인부터 하고 짐만 좀 내려놓고 나오자 해서 같이 가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다른 친구 마중을 다녀온다기에 그럼 나는 책 좀 보고 있는다고 했지요. 그렇게 저는 혼자 호텔방에 남아 뜻하지 않게 생애 첫 짧은 호캉스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날 읽었던 책이 바로 배철현 교수님의 <수련>인데요. 어찌나 감동적이고 마음에 쏙쏙 꽂히던지.. 그날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 책 다 읽고 들뜬 마음으로 다른 책들을 가지고 다시 호텔에 왔는데(사이책방에서 길만 건너면 노보텔입니다.) 잠시 후에 친구들이 돌아오는 바람에 짧은 호캉스는 끝나버렸지요.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추억은 다시 기억의 서랍 속에 넣어두고, 책을 펼쳐 봅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그것이 당신을 포용할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제가 언제가 발견한 독서의 비밀과 일치한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제가 발견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책은 자신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짜 비밀을 말해준다.”는 것.


사람도 그렇잖아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이게 되어 있지요. 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독서는 만남이니까요. 때론 사람 간의 만남보다도 더 진실한 만남인 경우도 많습니다. 책은 텍스트 그 이상의 것입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남을 부러워하다 보낸 세월이 저만큼 도망갑니다. 바로 이 순간을 낚아채십시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신경 쓰지 마십시오.”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다시금 인생의 지혜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늘,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는 진실을 말이죠.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여전히 실패하곤 합니다. 현재가 아니라 자꾸 과거를 보게 되고, 현재가 아니라 자꾸 미래를 보게 되니까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인식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요. 나를 ‘현재’에 붙잡아 두는 연습인 셈입니다. 이 순간 내가 숨 쉬고 있는 순간을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으로 포착하는 것입니다.


“미래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레 나에게 다가오는 신의 선물이다.”


미래는 현재가 주는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언제 펼쳐도 매서운 죽비처럼 안일한 나의 자세를 내리치는 문장으로 가득합니다. 때론 무서울 지경입니다. ㅎㅎ

진부함은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저 환경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죠.

오늘도 편안함에 안주하려 했던 순간들을 반성해 봅니다.


무엇을 빛나게 하는 것은 무엇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이 문장을 오늘 베스트 문장으로 선정합니다.

글 쓰고, 리뷰하는 게 뭐라고 집에서 아이들 데리고 다시 사무실 와서 글을 적고 있네요. 아직 밝게 빛나진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못해 빛이 바래지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이 한 명을 키우는 게 스타트업 하나 운영하는 것과 맞먹는다고요. 심지어 엑싯(exit)하는데 20년이 걸린다고. 얼마나 와닿고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나의 시간 없음이 내가 하는 일을 더디게 이끌고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수면 아래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물장구를 치며 물위에 떠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저는 스타트업 3.5개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군요. 비록 느리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으니 오늘은 오늘만큼의 성장을 하고 한 뼘만큼이라도 전진하겠습니다.


인생이라는 무대는 명사가 아닌 동사로 존재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그렇습니다. 그저 이름뿐인 건 의미 없죠.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동사로 존재한다는 뜻일 테니까요. 생각도 마찬가지 같아요. 머릿속에만 머무르는 생각은 삶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삶은 내 생각대로 "살아냄"이니까요.


어떤 방법도 방향도 못 찾고 내 삶의 방식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방황하는 자'가 아니라 '겁쟁이'라고 부릅니다.


"겁쟁이는 만난 적도 없는 적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지레 도망친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공포가 그를 겁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겁쟁이인 이유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두려움 앞에서 어떤 선택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는 스스로도 불편합니다. 불편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속여야 하죠.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적어도 겁쟁이는 되지 말아야죠.

우리 안에는 그 어떤 것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영웅이 살아있습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고도 하고, 내 마음이 곧 부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든 종교가 외부의 존재를 향한 경배라면, 신앙은 자신의 내면에 살아있는 존재를 향한 사랑입니다. 영웅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은 종교를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바로잡으셨죠. 부처님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설법했지만, 제자들은 그의 말씀에 집착하게 만들었습니다.


배철현 교수님은 우리가 감동적인 작품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이유는 그 작품이 우리 심연의 영웅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일개 고등학생이 거미의 쏘여 영웅이 된 이야기에 감동받는 이유는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책이, 어떤 상황이, 어떤 만남이 거미의 침처럼 우리 삶에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수련이라는 것은 결국 내 안의 영웅성을 일깨우는 작업입니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네요. 늦게까지 투정 없이 놀아주는 아이들이 고마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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