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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Mar 19. 2023


#_옳고, 좋은 것의 역습

옳고 좋은 것이 때로는 우리를 예쁜 감옥에 가둔다

가끔 너무 착해서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또 지나치게 성실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너무 건강해서 아픈 사람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항상 부지런하지만, 정작 눈앞에 있는 것에만 충실할 뿐 삶은 엉망인 경우도 있다.


다들 한 번씩은 그런 경험을 했거나, 그런 사람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옳고 좋은 것이 때로는 우리를 예쁜 감옥에 가둔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건강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들고, 근면은 때론 게으른 자에 대한 도량과 융통성의 부재를 낳는다. 착함은 우유부단이 되고, 성실은 사람을 질리게 한다.


한 때 독서에 푹 빠진 시기가 있었다.

제법 많은 책을 읽었고, 독서가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은 시기였다.

그런데 내 삶은 공허했다. 그 시절의 나는 책만 읽는 바보였다.

책을 왜 읽는지, 책을 읽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마냥 "독서는 좋은 것"이라는 공식에 매여 무작정 책만 읽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의 힘든 현실을 외면한 채 책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책을 사랑하고, 독서가 주는 가치를 너무나 잘 알지만, 모든 순간 '독서' 자체가 답이 될 순 없다는 것을 이젠 너무 잘 안다.


착한 것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착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착하게 보여야 할 것 같은 위선(善)을 행할 때도 많다. 관계에서 위선은 더 큰 실망을 낳는 법이다. 그래서 영리한 사람들은 오히려 위악(僞惡)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애초에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성실한 것도 그렇다. 성실은 오직 추구하는 이상과 일치할 때만 빛나는 법이다. "성실"은 좋은 것이라는 것에 매몰되어 자신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매진하면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가지고 있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하면, 사람은 그저 저마다 다 다를 뿐이다. 사람이 다른 것처럼 상황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최진석 교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철학의 본질을 "밝을 명(明)"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통 해와 달이 둘 다 있으니 더 밝다는 식으로 해석하곤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해(日)와 달(月)은 낮과 밤을 상징하고 양과 음을 말하는 것으로, 철학이란 결국 공존할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을 더 넓은 시각, 더 높은 차원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사물이나 이치의 양면을 두루 이해하고 볼 줄 아는 안목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밝음"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그저 좋다고 하는 것, 다들 옳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잘 꾸며진 생각의 감옥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오늘 어떤 생각의 허울 속에 나를 가두고 있었는지 돌아본다.



*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소노 아야코의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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