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을 할 줄 안다고 모든 책을 다 빨리 읽는 게 아니다.
질문 : 저는 사실 정독이 훨씬 중요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속독이라는 것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중요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그 부분부터는 더 천천히 깊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말씀 중에 속독은 숙독을 위한 준비라고 하셨잖아요. 그 숙독이라는 것이 결국 깊이 읽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답변 : 네 맞습니다. ‘속독과 숙독’을 ‘속성(速成)과 숙성(熟成)’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아요. 우리가 무언가 빨리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속성이라고 하잖아요. 반대로 숙성은 깊이 무르익게 되는 것을 말하죠. 숙독도 비슷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속성을 좋아합니다. ‘빨리빨리 문화’도 그렇게 빨리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착하는 특성이 반영된 것이지요. 독서도 속성으로 완성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신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독서에 속성 같은 건 없습니다. 빠른 완성은 없다는 말이죠. 물론 속독의 원리는 짧은 시간에 배울 수는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내가 책을 읽지 않으면 그 원리가 자신의 것이 되진 않아요.
이제 숙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책을 깊이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을 진지하게 만난다는 뜻이고, 그 책과 대화한다는 뜻이고, 조금 더 나아가서 그 책과 연애한다는 뜻입니다. 작가가 표현한 문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문장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생각해 함께 달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운명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그와 깊이 있게 만나는 게 당연하겠죠? 책을 빨리 읽더라도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나 문장은 운명처럼 다가옵니다. 이건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저는 종종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그런 좋은 책을 만나게 되는데요. 적당히 좋은 책은 내용이 궁금해서 얼른 읽어보지만, 진짜 좋은 책은 조금 읽다가 덮고는 계산하고 집이나 사무실에 와서 아껴보는 경우도 있거든요. 책에 밑줄도 긋고, 중요한 페이지를 접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들도 마구 적어가면서 읽는 거죠. 그리고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다시 보며 이전에 했던 생각과 새롭게 보이는 것들을 읽는 겁니다.
많은 분이 ‘정독’이라는 한 가지 독서 방법밖에 모르다 보니 모든 책을 그 방법으로만 읽고 생각하게 됩니다. 속독이나 간독, 발췌독 등을 ‘그건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야’라고 오해하게 되는 거죠. 당연히 모든 책을 속독으로만 읽거나 발췌해서만 읽으면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겠죠.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책을 정독으로만 읽은 것 역시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책을 빨리 읽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정독 모드로 더 빨리 읽고 싶다”일 거예요. 그것은 운전에 비유하면 기어 변속을 할 줄 모르는 초보 운전자가 기어를 1단에만 놓고서 “난 왜 이렇게 빨리 못 달리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책에 따라 상황에 따라 독서 모드는 달라야 합니다. 책을 읽는 목적은 그 책의 내용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책을 한번 끝까지 읽는 것이 마치 목표인 듯 독서를 합니다. 그런 독서라도 100권, 200권 지속적으로 하면 의미가 생길 수도 있겠으나, 많은 경우 지쳐버립니다. 그런 독서는 재미없거든요. 연애는 즐겁지만 소개팅만 100번, 200번 계속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책을 처음 볼 때나 무언가 나에게 필요한 책을 탐색할 때는 속독 모드가 유리합니다. 그러다가 “와,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싶은 느낌이 오는 책은 한 번만 읽으면 안 됩니다. 엄청난 손해거든요. 소개팅을 하다가 이 사람이다 싶으면 어떻게 하나요? 계속 만나고 싶잖아요. 소개팅을 하는 목적도 원래 그것이고요.
책도 빨리 읽으면서 좋은 책을 탐색하다 이것이다 싶으면 그 책에 빠져보는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같은 책을 다시 읽어도 지겹지 않은 독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책과 연애를 해본 겁니다. 그런 분들은 대체로 독서를 좋아하죠. 책과의 연애가 주는 행복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